2011-08-18

손학규의 길, 정동영의 길- 정장열// 주간조선, [2166호] 2011-07-25


손학규의 길, 정동영의 길

손학규
‘진보통합·중도강화’ 두 토끼 노리되 전통적 지지층 복원에 방점 당원들은 본선 경쟁력으로 선택할 것

정동영
“진보 못 잡으면 중도도 놓친다” ‘좌클릭’으로 정치노선 선회 진보 선명성 경쟁에서 선점 노려

‘희망버스’·대북 문제·한일관계 등 사사건건 충돌
차기주자 본격 행보 시작되는 11월 전당대회가 기점
▲ 지난 7월 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왼쪽)이 굳은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이날 두 사람은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히는 논쟁을 벌였다.photo 조선일보 DB
민주당의 최대 주주인 손학규(64) 대표와 정동영(58) 최고위원 간의 충돌이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즘 두 사람이 심심치 않게 충돌하는 게 단순한 의견 대립을 넘어 가치관의 충돌, 민주당의 비전과 전략에 대한 차이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차기주자로서의 본격 행보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주당 당헌 당규는 ‘대선 1년 전 예비주자의 당직 사퇴’를 규정하고 있다. 차기주자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한 두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대선 전략과 당의 정체성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손학규의 길과 정동영의 길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른 것일까.
   
   두 사람이 맞부딪친 것은 이미 여러 차례다. 대부분 ‘좌클릭’하고 있는 정 최고위원이 선명성을 앞세우며 손 대표를 몰아세우고, 손 대표가 여기에 맞서거나 일침을 가하는 양상이었다. 가장 최근에 주목을 받은 갈등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둘러싸고서였다. 정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7월 30일로 예정된 3차 ‘희망버스’에 당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김씨의 농성 200일이 되는 7월 24일 85호 크레인 앞에서 회의를 개최할 것도 요구했다. 
   
   이에 대한 손 대표의 반응은 ‘난 희망버스를 타지 않겠다’였다. 손 대표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된 민주당 입장은 간명하다.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경찰의 강제진압과 회사 측의 용역 동원을 적극 반대한다”면서도 “앞으로 정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함께 호흡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기는 현장에서 빠지겠다는 것이었다. 손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투쟁’을 앞세운 정 최고위원을 겨냥한 듯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손 대표는 “우리는 투쟁과 함께 항상 대화와 타협을 모색할 줄 알아야 한다. 상생을 도모하고 화합을 도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나는 당의 대표로 투쟁과 대화의 가운데서 그 중심을 잡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칙있는 포용정책” vs “식량·비료 지원하자”
   
   두 사람은 대북 정책을 놓고서도 공개 석상에서 충돌했었다. 역시 정 최고위원이 선공을 했다. 그는 지난 7월 1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손 대표가 지난 6월 일본 방문 시 제시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문제삼았다. 정 최고위원은 “‘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말”이라며 “마치 우리의 포용정책, 햇볕정책이 원칙이 없는 포용정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원칙 없는 포용정책은 종북 진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북한의 세습체제나 핵개발을 찬성하고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맞섰다. 당시 정 최고위원은 손 대표가 ‘종북 진보’라는 말을 쓰자 “대단히 유감스러운 표현”이라며 발언 취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발언 수위에서 보듯 대북관과 대북정책은 두 사람 간의 가장 큰 갈등 요소로 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7월 1일의 충돌 이후에도 두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 자신의 대북관을 피력하며 상대방을 계속 겨냥했다. 정 최고위원은 7월 3일 열린 당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희망 2012’ 출범식에서 “굶어죽지 않을 권리, 치료받아 죽지 않을 권리 등 북한 동포들의 원초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재개하는 것이 지난 10년간 포용정책이 갔던 길”이라고 강조했다. 인권과 핵, 미사일 문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손 대표와 다시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손 대표도 이날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출범 5주년 행사에서 “경기지사로 있을 때 한나라당 소속이었지만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경기도에서 평화축전도 개최했다”며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해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함께 번영하는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 관계에도 대립각
   
   이밖에도 두 사람은 미국·EU와의 FTA 체결 등의 주요 정책, 심지어 한·일 관계에서까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강창일·문학진·장세환 의원 등 독도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5월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열도를 방문해 간접적으로 독도 문제에 대한 항의 표시를 한 것을 옹호하는 입장인 반면, 손 대표는 지난 6월 일본 방문 시 민주당 의원들의 남쿠릴열도 방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 국민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듣고 있다” “이분들의 북방영토 방문은 당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적 행동이었다” 등의 발언을 했다.
   
   두 사람 간의 충돌에서 우선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정동영 최고위원의 ‘좌클릭’이다. 충돌의 발단이 정 최고위원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정 최고위원의 ‘좌클릭’ 자체가 길게 보면 그의 노선과 철학의 변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작년 6월 ‘담대한 진보’를 들고나오며 ‘좌클릭’을 공식화한 정 최고위원은 지난 대통령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나와 실용주의와 중도노선을 걸었다. 중산층을 복원해 중도를 공략하겠다는 것이 지난 대선에서 그의 기본 전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배제의 정치” “편가르기의 정치”라며 직접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야권 대통합도 차기주자 선출 변수
   
   그런 그가 담대한 진보를 통해 어떻게 보면 ‘소수의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정치적 대선회라 볼 수 있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 최고위원의 측근들은 변화의 기본 배경으로 지난 대선 실패의 경험을 든다. 한 측근은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기대했던 중도표의 이탈을 목격했다. 진보 성향의 중도표조차 우리를 찍지 않고 기권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권자 동원에 실패했고, 한 마디로 기본도 못했다. 결국 진보를 다지지 않고는 중도표도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중간표는 어차피 응집력이 약하고 대세론에 영향을 받는다. 중간표 공략보다는 진보를 다져 중도까지 불을 붙일 수 있는 발화점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략 변화는 차기주자로서 내년 당내 경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측근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과 염증이 야당표의 동력이 될 내년 대선에선 진보적 가치에 대한 선명성 경쟁이 야권의 주요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며 “본선에서는 선명성이 다소 누그러질 수 있지만 적어도 경선에서는 진보적 가치를 선명하게 앞세우는 게 당원들에게 먹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이 요즘 민노당·진보신당 등과의 통합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것 역시 이런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야권 대통합은 한나라당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일대일 대결 구도를 만드는 필수 전제이면서도 동시에 야권 차기주자 선출에서도 영향을 미칠 요소임은 분명하다. 만약 민주당 외곽의 좌파·진보 정당들이 지분을 갖고 범야권 단일 주자 선출에 나서는 상황이 올 경우 진보 선명성 경쟁에서 일찌감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게 중요해진다. 이런 전략들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손학규 대표를 겨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손 대표 측 “도발에 말려들 필요없다”
   
   정 최고위원 측에서는 이런 변화가 단순히 정치 공학이나 득표 테크닉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철학의 변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낳은 직접적 계기는 정 최고위원이 대선 패배 후 미국에 체류할 때 겪은 금융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미국 금융위기가 몰고온 중산층의 몰락과 양극화 심화 등을 목격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절감했고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구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패배 후인 2008년 7월 미국으로 갔다가 2009년 3월 귀국해 4월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복귀했다.
   
   그의 변화의 변은 작년 8월 자신이 직접 쓴 ‘정동영의 반성’이라는 글에 상세히 소개돼 있기도 하다. 그는 이 글에서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에도 문제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 못했다”며 “차기 대선에 대한 욕망 때문에 몸을 사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유화,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 유연화의 10년을 거치면서 비정규직은 850만명으로 늘어났고 600만명의 자영업자와 400만명의 농민들이 몰락의 위기에 내몰렸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대한 진보의 길을 뚜벅뚜벅 걷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원과 함께 민주당을 ‘진보적 민주당’으로 변화시켜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의 전략과 노선 변화에 대해 손학규 대표 쪽에서는 일단 “불가피한 선택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손학규 대표가 지난해 11월 영입한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어차피 중도층에서의 경쟁력이 제로로 떨어진 상태 아니냐”며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진보 쪽에서 승부수를 던져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 측에서는 정동영 최고위원에 일일이 맞서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일종의 곤혹스러움을 표시하고 있다. 당내 차기 경쟁에서 당 대표로서 유리한 입장에 올라있는 상황에서 정 최고위원과 일일이 맞설 경우 상대방에게 괜한 부력(浮力)만 보태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측근 의원은 “정동영 최고위원의 경우 지난 대선을 통해 이미 심판이 끝난 것 아니냐”며 “그의 도발에 일일이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양다리 걸치기?
   
   ‘진보’에 올인하고 있는 정 최고위원의 전략이 일종의 ‘원 트랙’ 노선이라면 손 대표는 이와 비교해 ‘투 트랙’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손 대표의 경우 진보통합과 중도강화의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희 부위원장은 “정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중도층이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지만 손 대표는 중도층에서 인물 소구력이 강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어차피 이슈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중도층의 선택 기준이 인물에 있다고 보면 손 대표는 충분히 중도층에서 먹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의 대명제인 진보통합도 놓칠 수 없는 과제지만 중도강화 역시 우리로서는 놓칠 수 없는 과제”라며 “일종의 양다리 걸치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을 모두 가져가야 손 대표가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승리한 1997년과 2002년 대선의 경우 결국 DJP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대표되는 중도포괄 전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2년 대선에서도 여전히 중도강화는 승부처라는 것이다. 당내 차기주자 경선에서 이념적 선명성이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정동영 최고위원 측의 전망에 대해서도 손 대표 측은 “당원들은 결국 대선 경쟁력을 보고 표를 던진다”며 “이념적으로는 중도, 연령적으로는 3040세대,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중원에서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판단해 차기 대선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희망버스 vs 민생탐방
   
   손 대표 측도 진보통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 최고위원 쪽과는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야권 통합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담합이 아니라 민주당을 포함해 모든 정당이 구태를 털어내는 자기혁신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손 대표의 생각”이라며 “예컨대 민노당은 (통합을 위해서는) 반(反)대중적인 구태를 털어낼 필요가 분명 있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이 측근은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무리해서 합칠 경우 대중에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 측근은 “손 대표로서는 (통합이 안돼도) 손해볼 게 없다”는 말도 했다.
   
   손 대표는 진보통합보다는 사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 복원, 당 자체를 바로세우는 것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이철희 부위원장은 “민주당은 지난 몇 번의 패배로 쇠락했고 지지자를 담아내는 컨테이너 기능이 망가졌다”며 “이를 바로잡아 전통적 지지층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3차 희망버스’ 탑승을 거부한 손 대표가 7월 13일 ‘동고동락 민생실천’ 발대식을 갖고 8월까지 2차 민생 탐방에 들어간 것도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손 대표의 어정쩡한 ‘투 트랙’ 전략이 FTA 등 진보층이 반발하는 대형 이슈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진보와 중도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학규와 정동영 두 사람의 노선 차이는 오는 11월 전당대회부터 본격적으로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차기주자로 나설 경우 대리전 양상이 될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당원들은 2012를 향한 선택지를 처음 받아들 것으로 보인다.

주간조선, [2166호] 2011-07-25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66100004&ctcd=C03
출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