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사설] 오바마 대통령, 자동차는 관리무역 하자는 건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동차 무역 불균형 문제를 또 꺼내들었다. 미 중부 주요 도시를 돌며 '민생투어'를 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일주일 새 4차례나 현대·기아차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수의 현대·기아차가 미국 도로를 달리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포드와 크라이슬러, 쉐보레를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률안의 의회 비준을 촉구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두 나라 간 통상분쟁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한-미 자동차 무역 불균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자동차 수출입에서 108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미국에서 팔린 현대·기아차는 지난해에 89만4000대에 이른 반면, 국내에서 팔린 미국산 차는 7000대 남짓에 머물렀다. 올해 들어선 현대·기아차의 미국시장 판매 점유율이 10%를 넘나들 정도로 급증했지만, 미국산 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0.5%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갈수록 점유율이 떨어지는 추세다. 미국 자동차업계로부터 불균형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질만도 하다.

그렇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특정 브랜드까지 지목하며 공론화하는 것은 타당성도 없을뿐더러 적절하지도 않다. 미 정부 관계자가 불균형 문제를 거론한 다음에는 직간접적인 통상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자동차분야 통상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미국 쪽 압박에 밀려 굴복한 사례가 많다. 특히 자동차 관련 세제나 환경규제, 안전기준과 관련한 법령을 미국산 차에 유리하도록 계속 바꿔왔다. 지난해에도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자동차 무역 불균형의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지 석달여 만에 굴욕적인 한-미 에프티에이 재협상이 이뤄진 바 있다.

한국산 차가 미국에서 잘 나가고, 미국산 차가 국내에서 잘 안 팔리는 현실은 경쟁의 결과일 뿐이다. 품질, 가격, 마케팅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산 차의 경쟁력이 낮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나 자동차업계는 마치 한국의 무역장벽 때문인 것처럼 왜곡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결과만 놓고 불균형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힘의 우위를 이용한 관리무역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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