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9

[아침신문 솎아보기] 국회 청문회 출석 한진중 회장 ‘답변 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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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들이고 어눌하게' 조남호 청문회 대비 문건이 기 막혀
[아침신문 솎아보기] 국회 청문회 출석 한진중 회장 ‘답변 쇼’ 논란
[0호] 2011년 08월 19일 (금) 고동우 기자  kdwoo@mediatoday.co.kr

100여명의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와 희망버스, 50여일 간의 잠적으로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18일 마침내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 6월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조 회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지 63일 만이다.

19일자 주요 신문은 이러한 사실과 의원들-조 회장 간의 문답 내용을 일제히 상세하게 전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뉴스는 조 회장이 답변 과정에서 이른바 ‘청문회 대비 문건’을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경향과 중앙은 조남호 회장이 이 ‘커닝 페이퍼’를 보는 사진까지 함께 게재하며 비중있게 이를 다루었다. 사진은 노동전문 월간지 ‘참여와 혁신’ 측이 찍은 것이다. 특히 경향은 <조남호의 ‘커닝 쇼’ 13명이 못 당했다>란 제목으로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은 ‘청문위원들의 공격적 질의에 대비한 답변 키워드’ 형식으로 구성됐다. 문건은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다소 어눌하게, 호소하는 어투로 답변하라’고 주문했고, 부정적 표현을 할 때에도 ‘아닙니다, 예 등 즉답을 지양하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하라’고 했다.

장기간 해외체류로 청문회에 불참했다고 했으나 지난 7월 중 2주간 국내에 있었던 사실에 대해선 ‘청문회를 앞둔 고의적 도피가 아니라 선주와 약속된 예정된 일정이며, 수주활동을 위해 불가피한 출국’이라고 답하도록 했다.

문건에는 또 '눈을 감았다 뜨고 심호흡 등 답변속도 조절해서 템포를 줄일 것. 인내력과의 싸움임', '즉답지양, 뜸을 들일 것', '똑똑하고 날카로운 인상 지양. 겸손한 자세'라는 주문과 ‘아무래도 저희 회사가 제일 고통스러운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답변하라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이 문건은 청문회장에서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구체 내용을 조목조목 거론하면서 “커닝 페이퍼를 써서 국민을 우롱하느냐”고 따졌다. 조남호 회장은 그러나 아무 답변하지 않았다.

   
경향 19일자 1면
 
경향은 “조 회장은 청문회에서 문건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랐다”며 때로 문건이 있는 아래에 시선을 두었다가 의원들로부터 “똑바로 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본인 불찰로 이런 문제를 야기시킨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계속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인 정리해고 철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조남호 회장은 이와 관련 “개인적으로 회사를 떠나신 분들을 내일 당장이라도 모셔오고 싶지만 회사의 긴박한 경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장 수주를 해도 인력을 투입해 선박을 건조하기까진 평균 1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고 해명했다. 조 회장은 “제반 사정을 감안해 합리적 시간(3년)을 제시했으나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 회사가 조기에 정상화된다면 복직을 앞당기겠다”는 약속만 했다.

다음은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이다.

경향 <조남호의 ‘커닝 쇼’ 13명이 못 당했다>
국민 <국정원장, 타워팰리스 옆에 사는 까닭은…>
동아 <낙태 반대 ‘아이러니’…10대 미혼모 늘었다>
서울 <막장 가계빚 막장 대응책>
세계 <고용창출 ‘덩치’ 커졌지만 성장 효과는 ‘낙제’ 수준>
조선 <대법원장 후보 양승태씨 지명>
중앙 <덕수궁 석조전 1898년 설계도 원본 찾았다>
한겨레 <쌍용차 정리해고 그후…조립팀 13명의 노동자들>
한국일보 <새 대법원장 양승태 지명 사법부 보수화 가속 예고>

국회 청문회 한계·문제점 집중 거론한 보수언론

한진중공업 국회 청문회 보도는 각 언론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드러내주는 가늠자이기도 했다.

중앙은 앞서 커닝 페이퍼 논란을 비롯해 청문회 내용을 자세히 전했으나 사설은 좀 딴판이었다. 중앙은 <모욕하고 윽박지르는 게 청문회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중앙 19일자 사설
 
중앙은 17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국회 공청회 자리에서 질타를 받은 사실도 거론하며 “의원들의 질타는 사실 예상됐던 바다. 기업인을 여러 차례 불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게 분노로 표출됐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인들도 잘못했다. 적극 협조하는 게 옳았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중앙은 이어 “하지만 정치권의 행태는 지나쳤다”고 예의 문제제기를 던졌다. 국회 공청회와 청문회라면 진지하고 성실해야 함은 물론이고, “해당 이슈를 놓고 출석한 기업인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이 문제로 지적한 의원들의 태도는 “‘해고는 살인’이라며 철회하라고 윽박지르고,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무조건 강압”한 것 등이다. 중앙은 “청문회 하기 전 ‘정치생명을 걸고 조 회장을 국민 앞에 무릎 꿇리겠다’고 맹세한 것부터 진실 규명을 제쳐두겠다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은 “의원이 막말하고, 한풀이하고, 윽박지르라고 청문회 하는 게 아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 '재벌 때리기'를 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었다면 착각이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능력과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로 청문회·공청회를 운영하니 기업인들에게 참석을 거부할 명분을 주는 것이다. 하려면 제발 좀 제대로 하자”고 촉구했다.

조선·한국·서울 등에도 중앙과 비슷한 관점의 기사와 칼럼이 게재됐다. 서울은 “일부 기업의 잘못 인정하지만 죄인 다루듯 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재계의 반응을 비중있게 전했고, 한국도 한 칼럼에서 “해법 마련보다는 조남호 회장의 무책임성을 성토, 해고 근로자들의 분노를 풀어주는 한풀이 마당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썼다.

   
서울 19일자 5면
 
조선은 사설을 통해 “국회 청문회가 이렇게 겉돌고 부실해진 가장 큰 책임은 국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청문회의 운영 주체인 국회는 엄정한 사실과 명확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으로 하여금 우리 사회 핵심 현안의 근본 문제가 무엇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하지만 지금까지의 청문회에선 정치인들의 돌출 언행과 정치인들 간에 벌인 활극(活劇)이 화제가 되는 일이 더 잦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의원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심정을 대변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TV 카메라에 잡힐 몇 초의 순간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문회가 계속 이런 식으로 운영되면 그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된다”고 우려하면서 “청문회의 권위는 의원들이 엄정한 사실과 명확한 논리로 임했는데도 증인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세평(世評)이 나올 때 비로소 살아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앞장서길 주문한 진보언론

한겨레와 경향도 일제히 관련 사설을 실었는데, 국회 청문회의 한계·부작용 등을 집중 거론한 보수언론의 논조와 전혀 달랐다. 비록 짧고 성의없고 애매모호하긴 했으나, 조남호 회장의 답변 하나하나에서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의 진실을 찾고 근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보수언론은 정치권의 ‘자제’를 촉구한 한면, 진보언론은 정치권이 더욱더 앞장서주길 기대했다.

   
한겨레 19일자 사설
 
한겨레는 <정리해고 부당성 확인한 한진중공업 청문회>란 제목의 사설에서 “조 회장의 책임회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통해 분명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없었으며, 회사 쪽이 주장한 어려움은 경영진 탓이 큰데도 정리해고를 통해 그 책임이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7~2009년 3년 동안 143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점, 2010년 51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지만 회사 내 조선·플랜트 부문 영업이익률은 13.7%(1497억원)로 업계 최고 수준이었던 점, 필리핀 수비크조선소는 31척의 배를 수주한 반면 영도조선소는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한 영업팀이 양쪽 조선소 수주를 담당하고 있어 의도적인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짙은 점 등이 그것이다.

한겨레는 이에 “이번 청문회는 조 회장의 해명을 듣고 면죄부를 주는 통과의례가 아니”라며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확인시키는 여러 사실이 드러난 만큼, 한나라당과 정부는 정리해고 철회를 전제로 한 경영 정상화 방안 마련을 조 회장에게 압박해야 한다. 그것만이 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와 공생발전을 보여주는 길”이라고 밝혔다.

경향도 사설에서 “노사 자율에 맡겨달라”,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정리해고 입장을 고수한 “조 회장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제 한진중 정리해고 문제는 그의 개인적 선의나 노사 자율에 맡겨놓아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경향 19일자 사설
 
경향 역시 한겨레처럼 ‘정치권’이 앞장서길 주문했는데 방향은 좀 더 근본적인 개선에 맞춰졌다. “청문회 성사로 할 일을 다했다고 뒤로 빠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리해고의 남발과 악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해고의 요건도 한층 엄격하게 조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경향은 정리해고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고,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라는 것도 재벌총수나 최고경영자들의 자의적 판단 또는 전횡을 은폐하는 구실로 기능하기 일쑤였다”고 전하면서 “정리해고가 ‘정리’돼야 할 또 하나의 사유는 고용증대가 지금 이 순간의 시대정신이자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국가 공동체의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남호 회장 청문회 눈길 끄는 사진들

18일 조남호 회장 국회 청문회장의 다양한 풍경은 사진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특히 한 한진중공업 해고자 가족이 조 회장의 팔을 붙잡고 정리해고 철회를 호소하는 장면(한겨레 1면), 조 회장이 고개와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증인 선서문을 제출하는 모습(동아 1면), 조 회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의원들의 질책을 듣는 사진(서울 5면) 등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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