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7

‘증세없이 미국 재건 없다’ 슈퍼부자들 위기감 발동

미국이 심각한 재정적자에 허덕이면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주장하는 '부자 증세'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론 변화를 경계하듯, '감세'를 주장하는 티파티 소속이자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은 16일(현지시각) 버핏을 겨냥해 "세금은 이미 충분히 높다. 당신이 인상적 한마디를 남기려 다른 사람들에게 세금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슈퍼부자는 버핏 혼자가 아니다. 버핏의 14일 기고에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도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지난해 11월에는 '재정강화를 지지하는 애국적 백만장자들'이라는 단체를 통해 백만장자 45명이 감세조처 중단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인터넷매체 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CNN) 설립자 테드 터너 등 12명을 증세 주장을 해온 부자들로 최근 꼽았다.

미국에서 부자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증세를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에 선이 닿는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당시 '따뜻한 보수주의'를 구호로 내걸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부자들의 기부와 사회 환원을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공화당 기조인 감세 정책과 함께 들고나왔다. 감세를 하면,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주장이었다. 결과는 심각한 재정적자, 복지 파탄, 사상 최대 빈부격차로 귀결됐다.

미국 시민단체들의 조사 내용을 보면, 부시 감세조처로 연소득 4만~5만달러의 중산층 가구는 세후소득이 2.2% 늘었고,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의 부자들은 세후소득이 6.2% 늘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감세 정책으로 중산층은 1인당 연간 860달러(92만원), 부자들은 12만8832달러(1억3808만원)를 더 얻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11월 (ABC) 방송 인터뷰에서 "부자들은 늘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쓰면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돈이)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10년간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이유는 심각한 재정적자에 대한 실질적 위기감이다. 심각한 재정적자 타개책으론 현재 공화당이 주장하는 재정 감축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증세가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미국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지난 4월 와 (CBS)의 여론조사에서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가구에 부과되는 연방정부 세금을 2013년부터 올리는 방안에 72%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55%가 부자 증세를 원했다. 이런 요구를 부자들이 마냥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특히 자본주의 역사가 깊은 미국에서 부자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 사회적 존경을 받는 데도 가치를 둔다.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안 낸다는 국민들의 인식은 이런 기반을 흔드는 셈이다.

또 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는 내수경기가 가라앉으면, 기업 매출감소, 주가하락 등으로 부자들의 소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내수가 가라앉아도 대기업 수익은 계속 늘어나는 한국 등 수출중심국과는 구조가 다르다.

물론 미국에서도 여전히 다수의 부자들은 증세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공화당이 악착같이 감세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기업이나 부자들의 로비가 배경이다. 보수 성향의 도 이날 버핏의 '부자 증세' 주장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하는 등 여론 물꼬를 돌리려 애썼다. 부자 증세 논란이 미국에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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