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6

[사설] 주민투표 지휘·독려하려면 시장 배지 떼고 하라

광복절인 어제 오세훈 서울시장은 매우 바빴다. 오후 3시 광화문광장 충무공 동상 앞 주민투표 알리기 1인 피켓 홍보전, 4시 지지 단체가 주관하는 주민투표 문화마당 참석, 5시 서울역 롯데마트 앞 주민투표 알리기 운동 등. 이에 앞서 2시엔 한나라당 중앙당사에서 이른바 '낙인 방지법'의 입법을 재촉했다. 그의 신념인 선별급식의 최대 약점인 가난한 학생 낙인효과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오 시장이 투표 관리자인지, 투표 지휘자인지 모를 지경이다. 아무리 다급해도 관리자로서 본분은 지켜야 하나, 그는 체면도 염치도 버렸다.

물론 이번 주민투표는 처음부터 오 시장의 각본과 지원에 의해 주민 동원 형태로 추진됐다. 불법투성이로나마 서명자 수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그랬다 해도 일단 투표 과정에 들어갔다면, 관리자 혹은 심판으로서 최소한의 본분은 지켜야 한다. 그건 법적인 문제를 떠나 그가 대표하는 1000만 시민의 자존심 문제다. 오 시장이 투표 과정에서도 한 집단의 선수로 뛰고자 한다면 심판 자리를 포기하는 게 깨끗하다. 지금처럼 심판 노릇을 하면서, 실제로는 한쪽 편에서 투표를 선동하고 독려하고 지휘하는 것은 부도덕할 뿐 아니라 적법하지도 않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서울시장의 소관 사항이 아니다. 그 시행 여부나 규모, 시기의 문제라면 서울시 교육감 소관 사항이다.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의 예산 지원 문제라면 물론 시장 소관일 것이다. 그러나 주민투표법상 예산에 관한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오 시장은 서울시 의회가 재의 끝에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에 대한 무효확인청구 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했다. 법을 존중하는 단체장 혹은 법률가라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재판중인 사안은 주민투표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 시장은 사실상 주민투표 청구 대표자 노릇을 하고 있다. 주민투표 자체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사유화하고 타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무상급식 반대는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고, 이를 위해 행동하겠다고 한다면, 백번 존중하겠다. 그러나 심판도 하고 선수로도 뛰겠다고 해선 안 된다. 반칙이다. 주민투표 관철을 위해 진두에서 지휘하고 독려하고 선동도 하겠다고 한다면, 당장 시장직부터 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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