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9

[안병길 칼럼] 조남호 회장의 청문회 성적표- 부산일보, 2011-08-19, 30면, 10:59:00

[안병길 칼럼] 조남호 회장의 청문회 성적표
/논설위원
안병길 기자  다른기사보기
 
[안병길 칼럼] 조남호 회장의 청문회 성적표
 
지난해 2월 24일 미국 하원 청문회장,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토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회장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사실 그는 청문회장에 서기가 정말 싫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타로 미국 법인장을 보낼까 하는 궁리도 했다. 미 의회의 반발과 여론이 안 좋아지자 정면 돌파를 결심한 것이다. 난생 처음 청문회장에 불려나온 그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잔뜩 벼르던 의원들은 그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브레이크 오작동, 가속페달 잠김 현상 등 1천만 대 이상의 리콜사태를 불러 온 차량결함이 토요타의 성장제일주의 때문이 아니냐고 집요하게 추궁했다. 통상 하루 만에 끝나는 청문회는 이틀 동안이나 이어졌다. 

도요다 회장은 진땀을 빼면서도 시종 진지하게 대답했다. 성장을 우선시하다 보니 리콜사태와 같은 안전문제가 발생해 유감이라며 진솔하게 사과했다. 물론 재발방지책과 신뢰회복 방안도 내놨다. 그는 청문회에서 살아남았고, 회사를 위기에서 구출했다. 그의 진정성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덕분에 토요타는 부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과거 명성을 서서히 되찾아 가고 있다.


토요타 회장 진실성으로 청문회 돌파 

난타 당한 조 회장 결자해지 자세 필요


일본의 전자회사 소니는 지난 4월 미국에서 1억 명가량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고를 내고 말았다. 미국 의회가 가만둘 리 없었다.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는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을 즉각 청문회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소니는 회장 대신 팀 사프 대표를 내보냈다. 그는 청문회장에서 소니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답변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되돌아온 결과는 냉혹했다. 성난 네티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소비자들로부터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소니는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어제 청문회 증언대에 섰다. 재벌 회장이 국회 청문회장에 등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토요타나 소니 회장처럼 그도 청문회 증언대에 서기가 차마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선박 수주를 핑계로 해외로 떠돌던 그였다. 심지어 국내에 머물면서도 해외출장 중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며 청문회를 피해 가던 사람이다. 남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한다는 조 회장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국민적 비난을 더 이상 못 본 체하다간 회사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데 대해 사과부터 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핵심 쟁점인 정리해고에 대한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졌고, '수주 0'에 대한 추궁도 이어졌다. 여야 가릴 것 없었다. 어디에도 그의 편은 없어 보였다. 심지어 여당의원들마저 민망하리만큼 밀어붙였다. 그만큼 조 회장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다는 반증이다.

흥분된 어조의 일부 의원들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한껏 몸을 낮추면서도 시종일관 냉정하고 침착했다.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예, 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각종 경영지표를 제시하며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끈질기게 추궁해도 물러서지 않고 회사의 입장만 반복했다. 사과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심려 끼쳐 죄송", "책임 통감", "본인 불찰"이라며 몇 차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토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회장처럼 조 회장도 청문회에서 성공한 것인가.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는 세계조선경기 위축과 영도조선소의 특성을 들어가며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청문회장의 여당 의원들조차 납득하지 못했다. 조목조목 따지는 의원들을 설득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노사자율에 맡겨 달라", "기다려 달라", "믿어 달라"고 되풀이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그는 진정성을 이미 의심받고 있는 것 같았다. 

조 회장은 '선 경영 정상화, 후 해고자 복직'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몇몇 의원이 부산경실련이 제시한 '복직 후 무급휴직' 카드를 받아들일 것을 권유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참다못한 한 의원으로부터 "협상카드도 없이 뭐 하러 청문회에 왔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얽힌 실타래를 푸는 청문회장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간 것은 무성의하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청문회는 끝났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로서도 답답하고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자업자득인 측면이 많다. 이것으로 '면피'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청문회의 결과가 토요타보다 오히려 소니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결자해지, 문제를 풀어낼 사람은 조 회장 자신이다. 이제 한진중의 미래는 조 회장의 결단력에 달려 있다.

pkahn@busan.com
 | 30면 | 입력시간: 2011-08-19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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