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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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칼럼] 통일은 도둑같이 오지 않는다
한겨레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오랫동안 "통일을 왜 해야 되나요?"라고 묻는 젊은 세대에게 해줄 답을 찾아왔다. 북한에 대한 만연한 불신과 통일비용이 천문학적 액수에 달할 것이라는 추측 탓에 통일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지는 이가 많아졌다. 그저 남북이 오랫동안 단일국가를 형성해온 동족이며, 분단은 외세가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것이기 때문에 통일은 운명적이라는 말로 설득하기에는 시대가 달라졌다. 그렇다고 통일이 가져다줄 분단비용 해소와 경제적 편익을, 전문가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는 통계치를 가지고 설명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어느 날 한반도 지도를 보며 문득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이 대륙과 연결된 반도국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통해 해양으로 진출하고 육지를 통해 대륙으로 나아가 세계 만방에 기상을 떨치며 나라를 번영시킬 수 있다고 배웠다.

2차 세계대전 후 140여개의 신생국가가 탄생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선진국 문턱에 접어든 거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비록 천민자본주의의 때를 벗고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아직 많은 숙제가 남아 있으나, 근면하고 재능 넘치는 우리 국민은 간난의 시대를 딛고 오늘의 번영을 성취하였다. 또 4월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혁명을 통해 자력으로 권위주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군인들을 병영 안으로 들여보내 직업군인으로 거듭나게 하며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오직 삼면 바다만으로 이룩했다. 명색이 기마민족인 우리는 실상 가장 중요한 육지 쪽이 온통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에 가로막힌 채 오늘에 이르렀다. 오히려 이 휴전선을 지키려고 막대한 국방비와 인력을 소모했으며, 분단은 친일기회주의 세력의 발호와 이념적 편식을 통해 반민주주의를 조장했다. 우리는 이 악조건을 뚫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했다.

그렇다면 막혔던 육지가 열려 남북 사이에 길이 뚫리고 사람·상품·문화가 자유롭게 넘나들며 북방으로 뻗어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미래학자도 경제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지만 우리의 문화적·경제적·심리적 공간 영역이 획기적으로 확장되고 발전할 것이며, 그 결과 우리 삶의 질에 대전환이 올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국민총생산의 85% 이상을 무역에 의존함으로써 해외경제의 동향에 나라 경제의 명운이 걸리고 국민의 삶이 동요하는 비정상적인 상황도 남북이 하나의 경제공동체가 되어 내수기반이 무역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질 때 극복할 여지가 생긴다. 이것이 우리에게 통일이 밥이며 희망인 까닭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처럼 도둑같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단언컨대, 꾸준한 남북협력의 노력을 통하지 않고 이러한 통일은 오지 않는다. 비록 복음의 문맥에서 착실한 통일준비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하지만, 최악의 남북관계 속에서 대통령이 '도둑같이 오는 통일'이 가까워졌다고 하니 북한의 조기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붕괴하더라도 흡수통일은 남북 화해협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북한 주민과 지배층이 남한에 대해 의존 심리를 가질 때나 가능하다. 지금처럼 대결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대남 불신이 가득 찬 북한 사람들이 중국에 도와달라고 하지 왜 남한에 손을 벌리겠는가?

북한이 망해도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며 110만명의 북한군과 무기는 그대로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의 동의 없이 북한 사태에 개입할 여지는 극히 좁다. 북한 지배층과 주민들의 대남 의존 심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통일이 도둑같이 불시에 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로서는 북한의 상황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되, 남북 모두의 대혼란을 초래할 급진통일을 피하고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명박 정부가 '도둑같이 올 통일에 대한 준비'라는 미몽에서 벗어나 통일을 위한 현단계의 진정한 준비는 남북대화와 협력이라는 사실을 남은 임기 안에 깨달을 수 있을까? 전 통일부 장관




기사등록 : 2011-08-18 오후 07: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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