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신동호가 만난 사람]30일 희망단식 끝낸 심상정 “김진숙은 나의 20년 벗”- 주간경향 939호, 2011-08-23.



[신동호가 만난 사람]30일 희망단식 끝낸 심상정 “김진숙은 나의 20년 벗”
2011 08/23주간경향 939호
ㆍ30일 희망단식 끝낸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 돌담 밑이 아니라 녹색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인터뷰 장소가 하루 만에 바뀐 것은 심 고문이 당의 결정과 사회 각계 인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지난 8월 11일 단식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같은 당의 노회찬 상임고문과 함께 농성에 들어간 지 딱 30일 만이다.

세 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대답할 위치에 있고 대답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치인이다. 국민적 관심사가 된 한진중공업 사태, 난항을 겪고 있는 진보통합 문제, 그리고 위기에 빠진 시장경제를 구원할 진보적 대안과 비전. 링거를 꽂고 응급실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는 다소 무리한 요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쾌히 승낙했다.

놀랍게도 그는 환자복만 벗으면 한 달 단식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처녀처럼 살결이 고왔고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데 말 속에 힘이 느껴졌다. 한 가지 단면만 보고도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30일 동안 장기 단식은 처음입니까.“저는 25년간 노동운동 하면서도 단식이나 삭발 같은 건 절대 반대였어요. 자학적인 투쟁이잖아요. 그런데 정치를 하면서 세 번 했고, 길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첫 번째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두 번째는 2009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굴뚝농성 사태 때였다. 둘 다 민주노동당 의원단, 진보신당 대표단 등의 일원으로 조직의 결정에 따라 참여한 것이었다. 스스로 단식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인이 마땅한 저항 수단이 없는 약자도 아닌데, 단식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을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인데요.“저희가 원내에 있었으면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서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했을 거예요. 워낙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원외에 있는 데다 당도 왜소해서 (이 문제를 정치권으로 가져올) 방법이 없었어요.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거죠.”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을 잘 압니까.“그럼요. 한 22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해고자 신분일 때 만나서 노동운동을 죽 함께 해왔어요. 금속노조에 있을 때는 사업장에 교육을 거의 같이 다니다시피 했어요. 늘 저랑 앞뒤로 나가서 (프로그램 진행을) 했는데, 김진숙씨 앞에서는 저는 항상 가짜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웃음) 그분의 삶 자체를 존경하니까….”

사업장의 내막과 김 위원을 잘 알고 있어서 이번 사태를 남다른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김진숙씨는 관록 있는 활동가이고, 말씀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거친 분이 아니거든요. 그런 분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것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개별 노사관계에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거든요. 정치적인 문제제기로 봤기 때문에 제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심 고문이 파악하는 고공농성의 메시지는 8월 18일 국회 청문회 개최로 일단 정치권에 전달된 셈이다. 그는 2003년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시절 한진중공업과 교섭을 담당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제가 한진중공업의 교섭대표였는데, 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9월 말에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러고 7일 만에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죽었어요. 김 위원장은 저랑 대의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던 사이이고 아주 선한 분이었죠. 목매기 이틀 전까지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사무처장 그만두셨지만 계속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1991년 박창수 위원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대책회의나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그 일을 담당했고요. 누구보다 한진 자본에 대해 제가 잘 압니다. 노사합의서를 작성해도 조남호 회장이 ‘노’ 해버리면 원점으로 돌아가거든요. 금속(산별노조)에서 ‘악질 사업장’ 1순위를 항상 차지했던 데였죠.”

김진숙 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크레인 아래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 싸움을 받아 안아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가 뭔가를 분명히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년 지방선거 이후 복지 화두가 전면에 제기된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달라지고 분명해졌다는 것이죠. 변화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요구의 중심에는 뭐가 있을까요. 바로 노동문제라는 게 제가 갖고 있는 평소 생각이었어요. 제가 17대 국회에 있을 때 정치권에서 소통이 안 됐던 점은 노동문제를 아주 주변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거였어요. 민주노총이 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이 잘못해서 생긴 문제, 노조를 지원하는 정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참 답답했습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희망버스는 진보의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이 ‘노동간 재분배’ 문제에 눈을 감으면서 대중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개혁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매우 크고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일, 노동조직이 스스로 혁신해야 할 일, 시민이나 국민이 시민사회에서 주력해야 할 일, 국민의 의식 변화,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맞물려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의 모든 격차 문제가 어떻게 노동단체만의 문제입니까. 민주노총이나 대중조직이 정규직 중심의 이익집단에서 사회적 책임을 받아 안아야 될 핵심의 과제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정치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하지 않으니까 시민이 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가 제기해야 할 아주 중요한 불균형 과제들을 시민이 희망버스를 통해 제기하는 거예요.”

진보정당 통합이 난항을 하고 있습니다. 분당의 요인이었던 이른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지요.
“새로운 통합정당이 가는 길에 의지를 모으는 데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봐요. 하나는 분당의 원인이 해소됐느냐는 거고요, 두 번째는 진보정치 발전 전략상 반드시 통합이 필요하고,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느냐는 거지요. 하나는 과거의 해소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전략인 거죠. 이제까지는 주로 과거 분당 원인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진보정치의 발전 전망까지를 함께 논의해서 의지를 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운동권 정당을 넘어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스스로 혁신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견해들은 국민 속에서 검증되면서 주변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통합의 또 하나 걸림돌은 국민참여당이다. 심 고문은 양 당사자인 이정희 민노당 대표, 유시민 참여당 대표와도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유 대표는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이었고, 심 고문은 총여학생회장이었다. 이 대표는 심 고문이 주도해서 만든 총여학생회의 마지막 회장 출신이다.

“진보 양당의 통합문제는 진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제이고, 국민참여당은 외연을 확대하는 과제입니다. 유시민 대표도 진보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연합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지금 순서가 뒤바뀌어서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저는 먼저 진보통합에 주력하고 통합 이후에 국민참여당을 포함해서 외연 확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하자, 이렇게 제안하고 있는 중입니다.”

민주당은 통합 대상으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는 겁니까.“검증되지 않은 정체성을 뒤섞는 것은 당장 총선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대선에서는 별로 유익하지 않다고 봅니다.”

대통합을 주장하는 사람은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나 정책 면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정파등록제 등을 통해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말하잖습니까.“민주당을 포함해서 정당들이 여러 진보적 의제에 다가오는 것은 사실 진보정당과의 연대 필요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주당이 노선 변화를 했다기보다 진보정치 세력의 조력을 구하기 위해서 정책적인 좌표를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한다면 진보정치 세력은 소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 열망을 다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지역주의 정당이잖아요. 과거로 통합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도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보는 겁니까.“많은 변화의 노력을 하고 있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국민은 정권을 주었을 때 어떤 정치를 했느냐를 가지고 그 정당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죠. 남북관계나 정치개혁의 측면에서는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보는데, 지금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개혁의 측면에서는 거리가 매우 큽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그 어느 정권보다도 재벌 영합적인 수출 위주의 개방화에 의존하는 경제를 지향했고,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잖습니까. 지금 경제민생 과제가 엄청나게 제기되고 있지만 민주당이 과감하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현재 발생하고 있는 민생경제 사안의 선행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한·미 FTA, 뉴타운, 양극화 등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대형마트규제법, 무상급식법, 반값등록금 문제 등 현재 제기되고 있는 모든 정책 현안들은 17대 국회 때 저희가 다 법안으로 제시했던 것인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반대해서 좌절됐던 거거든요.”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권주자 가운데 한 분으로 꼽히는데, 내년 대권에 도전할 의향이 있습니까.“글쎄요. 나서겠다. 안 나서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면 좋겠는데, 아직 진보진영 자체가 그 문제를 판단하는 데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진보정치에 무한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저에게 요구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죠.”

같은 여성정치인으로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여성적인 장점을 든다면….“여성정치인이 조직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아주 인정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성으로서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건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전형적인 ‘명예 남성형’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대중이 느끼는 여러 희로애락과 고민, 정서, 감수성을 가지고 정책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여성을 많이 봤습니다.”

야권 후보의 경우 유력하게 거론되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가운데 진보적 가치를 가장 근접하게 실현할 수 있는 분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민주세력 내에서 후보 경쟁이기 때문에 노선과 정책에서의 큰 차이를 구별하기가 좀 어렵지 않겠나란 생각이 들고요. 다만 진보정치 세력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연대·협력의 의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세계 경제위기와 국내 정치의 ‘좌클릭’ 등을 보면 가히 진보의 시대가 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진보정당은 여전히 소수이고 비주류입니다. 진보세력에 뭔가 근본적인 한계라든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지난 10여년간 진보정치가 뿌려놓은 씨앗이 결코 적지 않다고 봅니다. 이것을 어떻게 묶어 세워서 내년 선거에서 최소한 교섭단체 이상을 확보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 말하자면 나의 신념보다 진보정치에 의지하고자 하는 대중에게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보정치가 도약하는 데 있어서 자기혁신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통합은 진보세력을 결집시킴과 동시에 성찰과 혁신을 이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년에 교섭단체 확보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299석 중에 20석 가지고 뭘 할 수 있냐 반문하시겠지만, 진보정당이 교섭단체가 된다는 것은 진보적 개혁에 이니셔티브를 준다는 것이고, 정치가 이제는 진보·중도·보수로 삼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향후에 보수와 진보 노선과 정책 중심으로 정당 구조가 개편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 이후부터는 진보정치가 급성장할 수 있습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정리/이혜련 인턴기자 gerr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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