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정동영 ‘변화보다 안정’ 주도- 김광호// 경향신문, 2004-04-28 18:38:33

정동영 ‘변화보다 안정’ 주도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찾기가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태풍의 눈은 바로 ‘실용주의’다.

2박3일간의 당선자 워크숍을 관통한 ‘개혁 대 실용’의 팽팽한 긴장은 28일 정동영 의장의 ‘실용적 개혁정당론’과 함께 지도부의 기선제압으로 매듭지어졌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정의장식 실용주의가 의원들간의 본질적인 이념적 간극은 좁히지 못한 채 ‘개혁 후퇴’로 비치면서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실체와 배경=정의장이 주창한 ‘실용주의’는 ‘민생’ 우선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당의장 당선후 재래시장과 중소기업, 농가 등 민생현장을 돌며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분배”라고 강조해온 ‘경제중심정당’ ‘선 성장 후 개혁론’이 뿌리다.

따라서 민생우선은 결국 당장 피부에 와닿는 것을 의미하며 본질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일단 곳간에 곡식이 그득해야 인심이 난다’는 논리다.

열린우리당을 “가장 비시장 경제적인 정당”으로 꼬집은 이계안 당선자나 “민생·경제가 새 정치”라고 외친 정덕구 민생경제특별본부장 등 정의장이 직접 영입한 경제통들이 이론적 틀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홍재형, 강봉균, 김진표, 조성태, 이근식 등 당내 관료출신 그룹과 채수찬, 이상경, 김재홍, 김한길 당선자 등 당내 중도성향의 그룹이 추동세력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실용주의가 정체성 논쟁과 관련, ‘탈이념’의 상징이란 점이다. “유럽에서도 이념정당이 쇠퇴하고 있다” “정당의 이념을 규정해 급변하는 21세기에 융통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시대착오적이다”라는 정의장의 이날 발언들은 탈이념의 근거들이다.

이는 ‘개혁=이념=소란스러움’이란 인식이 깔린 것이고, 따라서 변화 과정에서 필연적인 진통을 최대한 뒤로 미루거나 피해가겠다는 의도다.

◇문제점=정당의 정체성으로 실용주의라는 노선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보수도 실용주의적일 수 있고, 진보도 실용주의적일 수 있다. 실용은 특정 사안을 대하는 태도이지 당의 노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의장의 실용주의가 개혁후퇴로 비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큰 화두들에 대해 ‘대증요법’에 의존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까닭이다. 당장 김원웅 의원은 “정의장의 탈이념·실용주의 노선은 보수정당임을 선언한 것”이라며 “이념 실현을 위한 실용주의적 변용은 있을 수 있지만 비판을 피하려 이념을 부정하는 것은 ‘철학의 빈곤’”이라고 직공했다.

실제 정의장이 이날 실용주의 정당의 모델로 거론한 미국 민주당의 사례는 이런 비판에 힘을 싣는다.

정의장은 “미국 민주당은 정책적 스펙트럼이 넓고 선거때마다 후보들과 당원들이 협상을 통해 정강정책을 정하는 전형적인 실용정당”이라고 소개했다. 실용성을 앞세워 그때 그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정의장의 “기업 규제철폐 정책은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가 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진보일 수도 있다”는 발언도 결국 이런 상대주의의 연장선이다. 당내에서 “실용주의는 노선이 아니다” “그런 민생이라면 한나라당이 더 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김광호기자〉


입력 : 2004-04-28 18: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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