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6

[세상 읽기] 조남호 개인의 문제일까 / 금태섭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존경받을 만한 경영자였다면 어땠을까. 정리해고를 하기 전에 자신을 비롯한 경영진의 보수를 먼저 삭감했다면. 해고 대상자를 찾아가 회사의 상황이 너무나 어려워 정리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반드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면. 김진숙이 올라간 크레인 아래 텐트를 치고서라도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고 설명을 하려는 진정성을 보였다면. 그랬다면 한진중공업 경영진이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희망버스도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조남호씨가 보인 행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감원 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주주들을 대상으로 174억원에 이르는 주식배당을 하고, 조선소 크레인에서 농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기 봉급을 50% 인상했다. 2007년도에 노사 간에 정리해고를 하지 않기로 합의서까지 썼는데, 왜 17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게 되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국외에서 도피성 체류를 했다. 마저 "한진중 조 회장 빨리 귀국 않고 뭘 꾸물거리는가"라는 원색적 제목의 사설로 그를 비난했다.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오너 경영인 한 사람이 '신속한 의사 결정과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한국적 오너 경영의 옹호 논리를 산산조각으로" 만드는 상황이 못내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조남호 개인의 부도덕에 기인한 것일까. 경영자가 양심적으로 대처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문제는 큰 진통 없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평소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일부 학자들마저 주장하듯이 '기업 총수의 책임 있는 자세와 결단'이 문제의 해답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영상 필요에 따른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일이고 노동유연성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예외 없이 정년보장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면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고를 당하더라도 인간적인 생활을 부정당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럽 복지국가들이나 영미 국가들에 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임금의 격차가 여러 배에 이르러 비교가 힘들 지경이고 기타 대우에서도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정도다. 비정규직 근로자 69%의 월평균 임금이 100만원에 못 미치고 10명 중 7명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저임금 계층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구조적인 해결 노력은 외면한 채 정리해고 문제를 경영자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을 때 정리해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만 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증인 채택을 두고 여야 간에 공방을 벌이던 국회가 결국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조남호씨도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한다. 제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빈다. 부도덕한 경영자 한 사람의 해외도피 의혹을 추궁하는 것만으로 국회의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 책임 있게 행동했더라도 남는 문제, 우리 사회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발 제3자 개입이니, 노사 자율이니 하는 케케묵은 얘기는 꺼내지 말았으면 한다.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씨나 전국에서 모여든 희망버스 탑승자들이 없었다면, 과연 국회의원들 스스로 이런 청문회를 열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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