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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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남자'는 위험하다 [2009.03.12. 제751호]
박찬수
[박찬수의 청와대 vs 백악관]
백악관 인사 검증 시스템: 고강도 절차를 거치지만 실패 역시 드물지 않은 이유
"당신 옷장에 해골을 감춰두고 있지 않은가(말하지 않은 비밀이 없느냐는 뜻). 만약 당신이 그걸 지금 당장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가 다른 경로를 통해 그걸 찾아낸다면, 당신은 '아웃'이다. 말 그대로 끝장이다." 백악관 인사책임자가 고위공직 후보자를 면담할 때 마지막에 하는 경고는 이렇다고 한다.

면담→10가지 서류 작성→몇 주간의 배경조사

31년간 백악관 인사국에서 공직 후보자 검증을 맡았던 프레드릭 웨컬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공직 후보자와의 면담을 통해 그가 가장 감추고 싶은 부분을 끄집어내야만 인사의 뒤탈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려면 면담은 거의 피의자를 신문하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 뉴욕 경찰청장 출신의 버나드 케릭(왼쪽)은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사 실패 케이스다. 후보자 면담은 공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조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후보자 지명을 발표했다. 사진 REUTERS/ KEVIN LAMARQUE

캐묻는 분야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우리나라에선 부동산 투기 문제, 그중에서도 위장전입을 통한 농지 매입과 아파트 전매가 많은 공직 후보자의 가장 약한 고리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들어선 교수 출신 인사들의 논문 표절 문제가 새로운 검증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선 날이 갈수록 마약이나 알코올중독 경험, 특히 탈세의 중요성이 커진다.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선 고위공직 후보자 3명이 탈세의 덫에 걸려 이 중 2명이 낙마했다.

백악관이 '표준적인 검증 절차'라 부르는 강도 높은 후보자 조사는 긴장의 연속이다. 백악관 인사국장(Personnel Director·한국의 민정수석비서관)이나 다른 인사책임자와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종종 얼굴을 붉히거나 격한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얼굴 붉히는 게 싫다면 공직을 포기하면 된다. 이 면담을 무사히 통과한 후보자에겐 10여 종의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백악관 인사국이 요구하는 인사기록서와 과거 세금 납부와 환급 기록을 조사하는 데 동의하는 서류, 연방수사국(FBI)이 후보자의 배경 조사를 하는 데 필요한 방대한 항목의 질문서, 보유 재산이 공직과 이해 충돌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재산 서류 등이 포함된다.


대규모 요원이 투입되는 FBI 배경 조사엔 보통 몇 주가 소요된다. FBI 조사가 너무 늦고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친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조사가 끝나면 후보자의 발가벗은 몸이 햇볕 아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재산 중에 이해 충돌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발견되면, 후보자는 해당 부처의 윤리위원회 직원과 마주 앉아 그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협의해야 한다. 백지신탁할 주식은 그렇게 하고, 팔아야 할 재산은 공식 지명 전에 처리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재산을 그렇게 처리하는 게 아깝다면, 물론 공직을 포기하면 된다. 조지 부시 전임 행정부는 백악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공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공직 생활은 결코 쉽지 않다. 여론과 언론의 면밀한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다. FBI에서 고용관계·직업·사생활·여행·건강·재산·법률·군복무·교육 관련 과거사를 파헤칠 것이다. 자산과 수입 내역이 공개되고, 공직 생활을 끝낸 뒤에도 '이해관계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피하기 위해 생활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 …공직에 입후보하기 전에 이런 사항을 검토해보고, 그래도 원한다면 서류를 제출하라."

백악관의 각 국·실에서 취합한 고위공직 후보자 평가자료도 인사국에 전달된다. 가령 공직 후보자가 상·하원 출신일 경우, 백악관의 의회 연락사무소에서 후보자에 대한 의회 의견을 수집해 전달한다. 경제 각료의 경우엔 경제부처 내부의 의견이 올라온다.

이런 과정이 모두 끝나면 대통령은 후보자와 함께 텔레비전 앞에 나와 국민에게 지명 사실을 공식 발표한다. 지명 발표 이후에도 후보자는 살얼음판을 계속 걸어야 한다. 언론의 검증에 시달려야 하고, 상원 인준청문회가 남아 있다. FBI의 배경 조사 보고서는 인준 청문회를 진행할 상원의원들에게도 전달된다. 아무리 작은 흠집이라도 공개를 피하긴 어렵다.

검증 안 끝났는데 후보자 지명

고강도의 검증 절차를 거치지만 미국 역시 인사 실패는 드물지 않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때엔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와 빌 리처드슨 상무장관 지명자, 낸시 킬리퍼 백악관 성과관리 책임자(Chief Perfomance Officer)가 잇따라 낙마했다. 수십 년의 노하우를 가진 검증 시스템을 갖췄는데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왜일까? 이유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백악관 인사책임자의 후보자 면담이 공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직 후보자에게 '거짓말을 했을 경우에 대한 강한 경고와 압박'이 가해지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건 모든 공직자의 공통된 심리다. 또 다른 이유는 FBI의 전면적인 배경 조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는 경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종종 인사 논란에 휩싸였는데, 그 이유는 지명 발표를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라고 전직 백악관 인사국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클린턴 행정부 초기에 행정부 고위직 충원에 참여했던 어니 밀러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인사 방향과 내용에 대한 잘못된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해 종종 너무 빨리 중요 직위의 공직 후보자를 발표했다. FBI 조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발표를 하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사 실패 케이스로 꼽히는 버나드 케릭 건은 이 두 가지 문제점을 모두 안고 있다.

»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왼쪽 사진 오른쪽)는 '탈세'라는 치명적인 언론의 공격에 탈락했다. 그에 반해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오른쪽 사진 오른쪽)은 같은 탈세 혐의를 받았으나 여론이 눈감아줬기에 무사히 인준이 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REUTERS/ JEFF HAYNES · REUTERS/ LARRY DOWNING

버나드 케릭.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뒤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했던 인물이다. 2001년 9·11 테러 때 뉴욕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며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케릭의 장관 지명은 큰 화제를 불러왔다. 9·11의 영웅이란 점뿐 아니라, 그의 개인사가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기 때문이다.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으로 뉴욕경찰청장까지 오른 점, 그리고 9·11 테러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헌신성과 용기에 미국민들은 감동했다. 그러나 막상 언론의 검증이 시작되자 케릭의 신화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케릭은 지명 일주일 만에 국토안보부 장관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불법 이민자인 히스패닉계 유모를 고용해 탈세를 했다는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이 더는 그를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경찰로 재직하면서 조직범죄에 연루된 회사와 불법 커넥션을 가진 점, 보유 아파트에 부과된 세금을 내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점, 9·11 이후 경찰관 휴식용으로 제공된 아파트를 애인과 밀회용으로 사용한 점 등 온갖 문제들이 우후죽순처럼 드러났다.

이렇게 비리가 많은 인물이 어떻게 백악관 인사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클레어 뷰캔 당시 백악관 부대변인은 "우리는 '표준적인 검증 절차'를 다 밟았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 인사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고 비판했다. 케릭의 흠집은 대부분 FBI 기본 조사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사전에 드러났다면 논란의 여지 없이 '아웃'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었다.

무시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총애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의 총애였다. 부시가 케릭을 처음 만난 건 9·11 테러 사흘 뒤인 2001년 9월14일 뉴욕 테러 현장에서였다. 무너진 무역센터 잔해의 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현장에서 부시는 뉴욕경찰청장이던 케릭의 지도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부시 대통령이 케릭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시는 케릭을 '우리 편'이라는 특별한 범주에 집어넣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증팀은 부시가 경찰을 좋아하고 '경찰이 미국의 진짜 영웅'이란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니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장관 후보에 오른 케릭을 면담한 이는 대통령 측근인 알베르토 곤살레스 백악관 법률고문(나중에 법무부 장관이 됨)이었다. 곤살레스는 텍사스에서부터 부시와 함께해온 '이너서클'(Inner Circle)의 핵심이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케릭을 공격적으로 다그쳤고 케릭은 몇 가지 자신의 흠결을 털어놓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문제를 파고드는 검증은 없었다. FBI의 기본 조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부시가 하루라도 빨리 케릭과 함께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서서 그의 발탁을 공개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언론도 차기 국토안보부 장관이 누구인지 공개하라고 재촉했다. 보통 몇 주가 걸리는 FBI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부시는 케릭을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총애와 빨리 인선을 발표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검증 절차를 완화하거나 생략하게 했고, 이것이 보기 드문 최악의 인사 실패로 나타난 것이다.

얼마 전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에 타격을 준 톰 대슐 보건장관 임명 실패는 여론의 향방이 후보자를 죽이고 살리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보여준다. 오바마의 인사 실패는 검증의 실패라기보다는 여론의 반향을 잘못 예측한 탓이 컸다. 한국의 부동산처럼, 미국에서 공직 후보자의 무덤은 탈세다. 숱한 논란과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탈세는 법적 잣대를 떠나 일반 국민의 감성을 건드리는 측면이 강하다.

»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미국의 세금 제도는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이 때문에 세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고, 탈세 문제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슐은 민간 부문에서 일하던 시기에, 건강 관련 업체로부터 수년간 기사 딸린 승용차를 제공받고도 이를 수입으로 신고하지 않아 14만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대슐은 차량을 제공받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을 2008년 6월에야 처음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건장관에 내정됐다는 언질을 받자 세금 미납 사실을 오바마 검증팀에 털어놓았고, 올 1월2일에 미납 세금을 모두 냈다. 오바마 팀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대슐 지명을 강행했다. 민주당 상원대표를 지낸 대슐은 의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오바마의 핵심 공약인 의료보험 개혁의 적임자였다. 그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선 누구보다 먼저 오바마 편에 섰던, 오바마의 정치적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오바마는 그런 대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탈세 사실이 불거진 뒤에도 오바마는 물론이고 에드워드 케네디 등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대슐을 옹호했다. 하지만 여론은 달랐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대슐의 탈세가 고의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세금 제도는 자발적인 신고에 기반하고 있다. 만약 대슐의 세금 미납을 용인한다면, 그건 (성실하게 세금을 자진신고하는) 미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다"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대슐은 결국 스스로 지명을 반납했고, 오바마는 "내 잘못이다. 내가 일을 망쳤다"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같은 탈세, 여론 차별?

반면에 똑같이 탈세 혐의를 받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여론이 눈감아줬기에 상원 인준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에 근무할 때 소득세 3만4천달러를 내지 않은 사실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미증유의 금융위기 속에서 '가이트너만 한 경제 소방수가 없다'는 평가가 그를 구사일생으로 살려냈다. 검증도 중요하지만, 여론 흐름이 고위공직 후보자의 생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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