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9

들을 수 없었던 '청문회(聽聞會) 쇼·쇼·쇼 ' 주연 한진중 조남호, '좀 어눌하게' 컨닝문건·책임회피…'믿는 구석' 있었다- 허완// 미디어오늘, 20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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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수 없었던 '청문회(聽聞會) 쇼·쇼·쇼 '
주연 한진중 조남호, '좀 어눌하게' 컨닝문건·책임회피…'믿는 구석' 있었다
[0호] 2011년 08월 19일 (금)허완 기자  nina@mediatoday.co.kr
청문회(聽聞會). ‘들을 청(聽)’ 자와 ‘들을 문(聞)’ 자가 두 번이나 쓰인 ‘청문회’에서 결국 들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18일 하루 동안 12시간 가까이 열린 국회 한진중공업 청문회 이야기다. 12시간 넘게 지속된 청문회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끝내 ‘정리해고 철회 불가’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오전 질의가 시작되자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한껏 자세를 낮췄다. 여야 의원들의 거센 공세에 조 회장은 연신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한다"거나 "제 불찰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져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여야 의원들은 정리해고를 단행했어야 하는 ‘경영상의 급박한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조 회장은 잔뜩 움츠러든 채 조심스레 답변을 이어갔다.
오전 질의가 끝나자 100여 명이 넘던 취재진 중 상당수는 청문회장을 빠져 나갔다. 2시간 뒤에 속개된 오후 질의에서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취재진이 크게 줄어든 청문회장에서 조 회장은 오전보다 한결 여유롭고 단호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여야 의원들의 추궁에 “그래서 어려운 여건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등 완곡하지만 더 강한 어조로 여야 의원들의 질의를 반박했다. 물론 조 회장은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겸손’한 표정과 몸짓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말’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이 18일 국회 청문회에 앞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조 회장은 ‘굳은 심지’의 소유자였다. 조 회장은 거듭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팔 하나를 떼어내는 아픔을 감수하며 결정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빅 조선소로의 물량 ‘빼돌리기’ 의혹에 대해서는 “선주가 결정한 것”이라고 버텼다. 조 회장은 또 경제위기 이후 수주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고, 조속히 회사를 정상화시켜 우선 현재 남아있는 1400명의 직원들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지켰다. 해고노동자들을 일단 복직시키고 순환휴직이나 무급휴직으로 전환할 의향은 없느냐는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도 “(그럴 의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알고 보니 조 회장은 ‘연기의 달인’이기도 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밤 10시 경, 조 회장이 들고 있던 ‘청문회 대비 문건’을 공개했다. ‘청문위원들의 공격적 질의에 대비한 답변 키워드(스토리 형식)’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다소 어눌하게, 호소하는 어투로 답변”하라거나 “눈을 감았다 뜨고 심호흡 등 답변속도 조절(템포를 줄일 것)”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똑똑하고 날카로운 인상 지양”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지침’도 담겨 있었다. 정 최고위원은 “이따위 컨닝페이퍼를 누가 썼냐”며 “이런 컨닝페이퍼를 써서 청문회를 우롱한 것을 사과하라”고 다그쳤다. 조 회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조 회장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대통령이 ‘공생발전’이니 ‘공정사회’니 하며 이제 와서 부산을 떨어도 재계는 그동안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여 왔다. 앞에서는 대통령의 장단에 맞춰 ‘동반성장’을 약속하면서 중소 협력업체들을 불러 요란하게 협약식을 열다가도 뒤에서는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행태가 이어졌다. 임기 초반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펼치며 ‘꼼꼼하게’  대기업의 밥그릇을 챙겨줬던 이 대통령이 돌연 ‘너무한 것 아니냐’며 대기업을 몰아세워도 소용없었다. 재계는 열심히 계열사를 늘리고 현금을 쌓아놓으면서도 이 대통령의 주문대로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멀쩡히 있던 일자리마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없애왔다. 조 회장은 적당히 버티면 별 일없이 끝날 것이라는 그들만의 ‘암묵적 지식’과 경험에 기대고 있는 듯 보였다.
조 회장의 ‘믿는 구석’은 또 있었다는 점이 새삼 드러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언론은 ‘모욕하고 윽박지르는 게 청문회가 아니다’라며 도리어 화살을 정치권으로 돌렸다. 중앙일보는 “재계는 격앙된 분위기라고 한다”며 “정치권의 행태는 지나쳤다”고 꼬집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돼야”할 청문회가 의원들의 진실규명은 제쳐둔 채 ‘막말’과 ‘한풀이’로 끝났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청문회가 이렇게 겉돌고 부실해진 가장 큰 책임은 국회에 있다”며 조 회장의 ‘결정적 한 마디’를 이끌어내지 못한 국회를 나무랐다. 애초 ‘진실 규명’이니 ‘결정적 한 마디’에는 큰 관심도 없던 그들이 말이다.
이래저래 씁쓸한 뒷맛만을 남기고 청문회는 그렇게 끝났다. 아침 10시에 시작해 자정이 다 되도록 이어진 한 편의 긴 ‘쇼’는 그렇게 일단 막을 내렸다. 다음 장면이 어떻게 이어질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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