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7

[세상 읽기] 획일화된 학술발표의 비애 / 정재승

2011년 과학자들의 학술대회 풍경. 나이 지긋한 좌장이 발표자의 소속과 이력, 발표 제목을 소개하면, 발표자는 연단으로 나와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발표시간은 20분 안팎. 질의응답 3분도 기다리고 있어, 17분 안에 구두발표를 마쳐야 한다. 빔 프로젝터와 맞물린 노트북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20장 남짓 쌓여 있고, 발표는 20장 슬라이드의 연속상영으로 숨가쁘게 마무리된다.

과학자들이 모여 최신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학술대회 현장은 분야만 다를 뿐 그 형식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파워포인트가 제공하는 바탕화면 위에 글자와 그림을 얹고,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슬라이드가 넘어간다. 가끔 애플의 키노트를 쓰는 발표자도 있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잠시 감탄할 뿐 이내 슬라이드 상영회가 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과학자들의 학술발표 형식은 구닥다리였으나 개성이 넘쳤다. 오에이치피(OHP)라 불리는 투명한 플라스틱 종이에 사인펜으로 글자를 써서 발표하는 경우가 가장 흔했다. 물리학이나 수학 분야는 공식이 많아 OHP 위에 수식을 쓰면서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고, 옆에 있는 칠판을 사용하는 발표자도 있었다.

의사들이 모이는 의학회는 발표 형식이 좀더 근사했다. 슬라이드필름을 마운트라 불리는 프레임 안에 담아, 영사기 빛을 비추는 형식이다. 버튼을 누르면 투박한 소리와 함께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는데, 환부 사진이나 현미경 조직사진이 많아, OHP보다는 슬라이드필름 발표가 더 효율적이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더 독특했다. 발표자가 연단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발표 원고를 읽고 청중은 발표자의 낭독을 듣는 형식이었다. 다 읽고 나면 질문과 대답이 쏟아졌다. 처음엔 '논문 낭독회'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그림 몇 장, 키워드 몇 개로 대충 넘어가는 요즘의 슬라이드 발표보다 논리가 더 정교하고 논의가 더 깊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작품들을 잔뜩 보여주던 예술가들의 독특한 발표도 인상적이었다. 설명은 정갈하지 못했지만, 작품이 주는 감동에 젖어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을 들어주던 조교, 돌아다니며 설명하는 예술가, 가까이 다가가 작품을 살피던 청중. 이제는 사라진 강연 풍경인 듯싶다.

21세기의 과학자와 인문사회학자, 예술가는 모두 강연을 위해 파워포인트를 준비해야 한다. 수식을 천천히 곱씹어야 하는 학자도, 정교한 논리로 얽힌 문장들을 읊어야 하는 학자도, 조각이나 설치미술을 하는 예술가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발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윈도 오에스(OS)와 엠에스(MS) 오피스의 독점은 학자들이 지식을 나누는 방식마저 획일화시켜 버렸다. 내 강연에 가장 잘 맞고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형식을 고민할 시간마저 박탈당했다.

학생들은 교수가 수업시간에 공식을 천천히 유도해 주길 바라지만 수업은 슬라이드 쇼로 대체되었고, 함께 책을 읽으며 문단을 음미해야 할 시간은 키워드 나열로 얼버무려졌다. 만져보고 살펴보고 소통해야 할 수업과 강연은 어두침침한 교실 안의 화려한 이미지쇼로 전락했다.

낭독회도 좋고, 모의법정도 좋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강연도 근사하고, 손에 쥐여주고 직접 만들어보게 하는 강연도 멋지리라. '간단히 계산해 보면' 같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대충 넘어가지 않고 천천히 수식을 따라가고, 정연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다양한 강연이 시도됐으면 좋겠다. 테드(TED) 강연의 프레지처럼 파워포인트의 대안도 다양하게 개발됐으면 좋겠다. 창의적인 정신적 양식은 개성적인 그릇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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