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4

PK도 ‘안풍’…“당만 보고 찍지 않겠다는 사람 많더라”

"추석 때 만난 사람 대부분이 안철수, 박근혜 이야기더라고요."(한 부산 출신 한나라당 초선 의원)

부산·경남(PK) 민심이 들썩이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무산과 저축은행, 한진 중공업 사태 등으로 집권여당에 격앙한 민심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지역출신 인물들의 급부상을 매개로 대안 쪽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지역 여야 정치인들이 전하는 '추석 민심' 속에서도 '안철수 돌풍'은 단연 화젯거리였다. 내년 총선에서 부산진갑 출마를 준비 중인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은 13일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안철수가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재래시장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안철수 원장이 부산 출신이란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많고,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현재 야당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는 세력까지 합쳐서 대안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시민들 중엔 기성 정치권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바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약사 김정훈(46)씨는 "민주당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지지부진한 통합 논의를 보면 신물이 난다"며 "기성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이 당리당략을 쫓지 않는 순수함에 사람들에게 열광하고 있다. 안풍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김아무개씨(43)는 "시민들은 한나라당이 하나, 민주당이 하나 결과는 같다고 본다"며 "안 원장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이고 컴퓨터 분야에서 새로운 개척을 한 도전자 이미지가 강해 기존 틀을 벗어난 사고를 할 것이란 기대감이 안풍의 원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안 원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 한나라당에 위협구를 던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지난 6~7일 -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42.5%의 지지를 얻어 37.7%를 얻은 박 전 대표를 따돌렸다. 부산의 한 정치권 인사는 "부산·경남은 대구·경북과 달리 박 전 대표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안철수 돌풍을 계기로 박 전 대표가 계속 팔짱을 끼고 소극적으로 행동해온 데 대한 반감이 커졌다. 이는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걸 선호하는 지역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부산지역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고 안주하다간 큰 코 다칠 것이라면서 이젠 당보다는 얼마나 지역구에서 제대로 일했는지를 보고 찍겠다는 충고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진복 의원은 "안철수 바람 한 번에 여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지 않더라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창원시 지역위원회 위원장)는 "창원 등 경남 지역에서도 이젠 당만 보고 찍지 않겠다는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며 "추석 때 만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제발 단일화해서 제대로 된, 똑똑한 사람 내보내라, 그러면 망설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더라"고 전했다.

안철수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두고는 부산 민심도 엇갈렸다. 내년 4월 총선 전 마지막 추석을 맞아 지역을 돈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박민식 의원은 "만나본 사람이 한정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50대 이상은 안 원장을 잘 모르더라"며 "지금껏 안 원장이 쌓아온 컴퓨터 전문가라는 이미지와 정치인 안철수와는 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김아무개씨(56)는 "한나라당의 인기가 많이 떨어지고 욕을 먹는 것은 사실이지만 야당도 잘하는 게 없다"며 "여전히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안철수, 문재인씨가 나와도 한나라당을 찍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바람도 언젠가는 그칠 것이고, 결국 강고한 지역 구도와 여당의 조직력이 선거에서 위력을 떨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맨날 부산 시민들이 프로야구에서 롯데가 못한다고 욕해도 결국 야구장에선 '부산갈매기'를 외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안풍이 외려 부산 경남지역 여권 지지자를 결속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안풍이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겐 '이러다간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가 모두 다 무너진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더라"며 "외려 박 전 대표의 지지가 견고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은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거부에서 표출되는 것인데, 지금 부산·경남은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정서는 강하고, 다른 야당에 대해서는 지지로 돌아서기에는 조금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제는 당보다는 사람을 보겠다"는 여론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다음달 26일 치러지는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가 안풍과 내년 4월 총선에서의 승패를 가늠해 보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나라당 후보인 정영석 전 부산시 환경공단 이사장과 야권 단일후보인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맞붙는 이 선거 결과가 지역 유권자들의 '변화'의 강도를 측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김광수 기자, 성연철 이태희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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