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어제 영세사업장 저소득 노동자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일부를 지원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내놨다. 전체 1700만 노동자 가운데 8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낮은 임금과 고용차별을 해소하는 데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알맹이가 없고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 대책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 개선에 도움 되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120% 이하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의 3분의 1을 정부한테서 지원받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업주 역시 동일한 지원을 받게 되니, 60만~70만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이 좀더 촘촘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불법파견에 대해 사용 기간에 관계없이 직접 고용을 의무화한 것 등도 진일보한 노동조건 보호 조처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선 정규직의 50%에 불과한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사내 하도급이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임금의 경우 '정규직의 80%로 늘려 간다'는 명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추진한다는 발표에 그쳤다. 이 정도로는 실효성이 담보되기 어렵다. 또 사내 하도급의 남용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손질한다거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 등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대책은 눈앞의 추석 민심 등을 우려해 급조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게다가 이 정부가 추구하는 고용정책의 핵심인 노동시장 유연화, 파견직 확대 등은 비정규직 해소와 충돌하는 방향이어서 진정성마저 의심된다. 당장 현대자동차에선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이 시정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그저 모른 체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여당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등 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정규직 차별의 상징인 현대자동차에 단호한 시정조처를 내려 비정규직 보호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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