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4

크루그먼 “9·11 악용 수치스럽다” 네오콘 맹비난

9·11 테러 10년을 맞은 당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사진)이 "9·11 기념일은 미국에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미국 내 논란이 뜨겁다.

크루그먼은 11일(현지시각)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수치스러운 세월'이라는 짧은 글에서 "9·11 이후 벌어진 일들은 깊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대참사를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했건만, (보수파들은) 이를 분열의 요소로 삼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9·11 테러 당시 영웅으로 떠올랐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가짜 영웅들'이라며 9·11 테러로 인한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들의 개인적·정치적 이익을 채웠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네오콘들이 (애초) 싸우려 했던, (9·11 테러와) 상관없는 (이라크) 전쟁 정당화에 9·11 테러가 이용됐다"고 못박았다. 또 그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을 전문가들은 부패에 눈감고 잔학행위에 지지를 보냈다"고 당시 지식인들까지 비판했다. 크루그먼은 논란을 예상한 듯 이 글에 댓글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파들은 에 그의 칼럼니스트 해촉을 요구하는 등 맹비난을 퍼부었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12일 트위터를 통해 "크루그먼의 불쾌한 글을 읽은 뒤 오늘 뉴욕타임스 구독 중단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보수논객인 메긴 켈리는 에 "겁쟁이 크루그먼이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9·11 당시 놀랍도록 훌륭했던 부시 전 대통령과 줄리아니 전 시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의 자유가 있다지만, 9·11에 대해선 그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진보논객들은 변호에 나섰다. 진보 블로거 니콜 벨은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에서 4752명의 미군과 10만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숨졌다"며 "어떻게 9·11의 유산이 수치가 아닐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크루그먼은 단지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논쟁이 뜨거워지자, 크루그먼은 12일 다시 글을 올려 "내가 9·11 이후 2년간 말하지 않던 것을 이번 글에서 말한 건 하나도 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또 "9·11 대참사가 어떻게 오용됐는지 되새기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잊어서도, 용서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