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3

[논쟁] 세계경제 풍랑 속, 한국경제 전망은?

세계 경제가 '더블 딥' 공포에 빠졌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 상황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전 유럽으로 퍼져가면서 이른바 '유로존' 위기를 불러왔다. 세계 경제의 심장인 미국은 사상 최악의 정부 재정적자와 고용한파 등 바닥을 모르는 경기침체 상황에 빠져 있다. 이러한 대외적 위기 상황 속에 놓인 한국 경제의 앞날은 어떨까? '위기는 기회다'라는 낙관론과, '대내외 여건 모두 좋지 않다'는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두 전문가의 하반기 경제 전망을 들어본다.

위기는 국가간 결속력을 높인다

80년대 일본처럼 중국·아시아가
소비의 중심지로 더욱 부각되고,
한국은 내수의 역할이 더 커지며
아시아 내 교역이 더 중요해질 것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중침체에 대한 우려, 그리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여기에 유럽 재정위기는 더욱 확산되는 일로에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선진국 경제에 일제히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급박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국가들은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가 직면한 환경은 큰 틀에서 본다면 불균형 성장이 초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치 1980년대 미국과 일본 및 신흥 공업국가들과의 수지 불균형이 초래했던 것과 유사하다. 당시에는 이해당사국들이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협약 등 정책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불균형 해소에 힘을 모은 바 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아직은 그때처럼 적극적인 정책적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제까지는 단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나라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에 불안을 초래한 선진국의 대규모 부채 문제는 하루이틀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항상 모든 위기가 그렇듯이 문제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확산되곤 한다. 그리스 문제가 그렇다. 이제 그리스는 다른 나라들의 지원으로도 자생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스 1년만기 국채 금리가 90%를 넘어선 것은 그리스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시장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이제 문제는 그리스 그 이상으로 확산되어 버렸다.

그리스가 빚을 못 갚으면 일차적으로 채권자(주로 유럽계 은행)들이 그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 채권은 약 2000억달러 정도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자체적인 상각과 해당국 정부의 지원으로 큰 충격 없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스 이외에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처럼 이미 구제금융으로 버티고 있는 국가들로 문제가 확산되면 1조달러가 넘는 채권이 부실화된다. 그리스의 악화는 이탈리아 역시 이를 따라갈 것이라는 불안감을 키우기 마련이다. 이탈리아까지 가세하면 3조달러의 은행 채권이 부실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 누군가의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 차원에서의 대응도 그리스에 집중하기보다는 이탈리아까지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진화하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탈리아가 위험해지면 그다음은 프랑스, 그리고 또 부채가 많은 다른 선진국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탈리아는 세계 경제 불황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고, 여기에서 문제가 진화되는지가 중요하다.

이미 선진국 부채 문제를 극복할 대안들이 준비되고 있다. 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 확대, 필요시 정부의 우선주 형태의 출자, 시장에서의 국채금리 안정을 위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과 같은 정책들이다. 미국이 2008년에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시행했던 정책들이 다시 유럽에서 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보다 궁극적인 것은 중국의 움직임이다. 현재 문제가 본질적으로 세계의 불균형에서부터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나서는 것은 불균형 해소에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의 이탈리아 국채 매입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에 희망이 생겨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위기와 여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얼마나 빨리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단언하기 힘들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위기는 주요 국가들 사이에 결속력을 높여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가 악화될수록 결속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 이탈리아 부채 문제는 이탈리아가 아닌 세계 경제의 문제이다. 얼마나 빨리 합의에 도달하는지에 따라 해결의 시점과 비용이 달라질 것이다.

긴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처럼 국가부채 문제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들은 부양을 통해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선진국은 긴축을 통해 건전성을 확보하기에 주력할 것이다. 80년대 일본과 유사하게 중국 및 아시아 지역이 소비의 중심지로 더욱 부각될 것이고, 아시아 통화는 빠르게 절상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무역보다는 내수의 역할이 더 커지고, 아시아 역내 교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김승현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지지부진한 상황 이어질 것

세계 경제의 흐름은 우리 경제에
수출·부채 문제로 부정적 영향…
하반기 경제는 급격한 침체보다
부진한 상황 지속되는 모습 예상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경제와 동조화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소비, 투자 등 내수 경기는 계속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세계 경기 변동에 따라 움직이면서 우리나라 경기 흐름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도 세계 경기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 경기의 진로가 결정되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최근 미국에서 비롯된 세계 주가폭락 사태는 향후 국내 경제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의 주가 급락은 세계 경제가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민간부문의 부채를 흡수하여 건전성을 높이고, 또 경기부양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늘려줌으로써 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 이러한 기대를 바탕으로 미국 등 선진국의 소비가 회복되고 이에 기반해 세계 교역과 투자가 살아나면서 위기로부터의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미국마저도 국가부채 문제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이러한 흐름이 더는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소비하기보다는 저축을 늘릴 것이고 기업들도 투자를 최대한 자제할 것이다. 적자를 줄여야 하는 정부는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림으로써 경기를 오히려 더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하반기부터 세계 경기는 활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내년까지도 지속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흐름은 우리 경제에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그동안 성장을 주도해왔던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세계 경기, 특히 선진국의 경기 부진 때 가장 크게 줄어드는 소비부문은 가전제품, 자동차 등 내구재이고 또 이를 생산하기 위한 각종 전자부품도 수요가 둔화된다. 우리나라는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수출상품 구성도 내구재와 정보기술(IT) 부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 과거 리먼쇼크 시기에는 원화가 급등하면서 상대적인 수출경쟁력이라도 높아졌지만, 지금은 선진국 통화의 전반적 약세로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미 우리나라 정보기술 부문은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수출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 향후 수요가 둔화되고 원화 절상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주력 수출품목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일본 대지진의 반사효과도 일본의 조업이 정상화되면서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도 부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부채 급증은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빠른 증가가 지속됐던 가계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이를 축소시키려는 정책 당국의 의지가 강하다. 균형재정 기조 달성도 예정보다 1년 앞당길 것으로 계획하는 등 경제 전반적으로 지출을 줄여 부채를 축소시키려는 노력이 커질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예상되지만 당장 수요가 줄어들어 경기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물론 경제가 과거 리먼쇼크 시기처럼 단기간 내 급격하게 침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리먼쇼크 시기에는 민간 금융기관들이 연쇄파산하면서 세계적으로 극심한 신용경색 현상이 발생했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국가, 특히 선진국의 경우에는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도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질 것이라는 점도 긍정적 측면이다. 현재 물가가 5% 이상의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상 강우 등으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유가의 오름세가 진정되고 작황 개선으로 농산물 가격도 점차 안정되면서 물가 부담은 조금씩 낮아질 전망이다. 그동안 고물가 부담이 가계가 소비를 늘리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이러한 충격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하반기 국내 경제는 급격한 침체보다는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는 모습이 예상된다. 특히 수출이 위축되는 가운데 내수경기도 뚜렷하게 회복되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경제성장률 수치로 비교해 본다면 지난해 6%에서 올해는 4% 정도로 성장률이 낮아질 전망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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