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아침, 미국 뉴욕의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시민들이 출근길에 있거나 커피잔을 기울일 시간인 오전 8시46분, 아메리칸항공 소속 보잉 767 여객기가 초고층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타워로 돌진했다. 9시3분에는 유나이티드항공 소속의 또다른 보잉 767기가 남쪽 타워마저 들이박았다. 9·11 동시테러의 시작이었다.
9시37분에는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민항기가 떨어졌고, 10시3분에는 또다른 민항기가 워싱턴으로 향하던 도중 추락했다. 1시간 17분에 걸친 4건의 연쇄테러로 모두 299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중 41%는 아직도 주검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주검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세계는 경악했다. 기나긴 '테러와의 전쟁'도 막이 올랐다. 미국은 그해 10월 알카에다 박멸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두 전쟁으로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 사망자만 9월 현재 7494명에 이른다. 민간인 희생자는 이라크에서만 10만여명, 아프간에서도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로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미 의회조사국은 미국이 10년간 쓴 전쟁 비용이 1조2833억달러(1378조원)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시사주간 는 최근 미국 군부와 정보기관, 보안 관련 당국이 쏟아부은 비용을 모두 합치면 3조2280억달러(3466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9·11테러의 또다른 희생자는 '진실'이다. 테러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소수의 테러리스트들에게 본토를 공격당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아랍세계뿐 아니라 상당수 미국인조차 백악관의 공식 발표와 이를 뒷받침할 증거들을 믿지 않을 만큼 역대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의혹과 이에 대한 해명을 간추린다.
■ 미 공군기들이 피랍 여객기들을 요격 또는 제지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 미 공군은 뜻밖의 항공기 동시테러에 대응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데다, 북미방공사령부(NORAD)가 항공관제당국과 충분한 정보를 교환하지 못했다.
■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원격조종장치로 폭파됐다.
= 항공기 충돌의 충격과 대량의 항공유 연소에 따른 고열로 건물을 지탱하는 뼈대가 약해진 상태에서, 무너진 상층부의 하중을 아래층이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주저앉았다.
■ 펜타곤은 아메리카항공 77편의 충돌이 아닌 미국의 미사일에 피격됐다.
= 미국민간엔지니어협회(ASCE)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건물의 5면 중 한쪽 면에만 작은 구멍이 뚫리는 가벼운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피랍 항공기가 건물을 타격하기에 앞서 양쪽 날개가 각각 지상과 펜타곤 청사의 내력기둥(load bearing column)에 부딪쳐 부러지면서 충격이 줄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파손 부위와 비행기의 날개 길이도 일치한다.
■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한 비행기 중 하나는 미국 군용기다.
= 쌍둥이빌딩 중 남쪽 빌딩에 충돌한 비행기를 촬영한 화면에는 민항기와 달리 동체에 창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에 따른 것인데, 사진의 해상도가 낮은데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현장에서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의 동체 조각을 회수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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