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1

한명숙 ‘독배’ 드나

한명숙 전 총리는 "피고인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라며 웃었다. 9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민주당 중진의원 조찬 모임에서다. 그는 "2년 가까이 되고 있는데, 재판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고, 큰 시련을 극복하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돌발적인 사건으로 당에서 저에 대한 기대가 나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친노 의원은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고심하는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독배를 든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모임에서 정세균 최고위원 등 9명의 중진의원은 "꽃가마 타는 길이 아니라 자갈길이지만, 당을 위해 출마해 달라"고 설득했다. 한 전 총리는 "추석 연휴 기간에 심사숙고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한 전 총리의 이날 모임 참석을 두고 출마 쪽에 무게를 두는 해석이 많다. 한 전 총리는 "내가 당원이다. 당원의 기대를 받고 있고, 당 중심의 생각을 하고 있다"며 "생각의 가닥을 잡아가는 막바지 단계다. 중진의원들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중진의원들뿐 아니라 '진보개혁모임'도 한 전 총리에게 '결단'을 요청하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했던 원혜영·박영선 의원도 한 전 총리를 돕기로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후보군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한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 경선은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 전 총리로선 10월 중순께로 예상되는 선고 공판 결과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한 측근은 "한 전 총리는 출마 문제를 내년 총선·대선에서 야권통합이라는 구도와 연관해 고민하고 있다"며 "한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존재감이 약해질 텐데, 개인적으로 (재판 때문에) 너무 힘든 상황이라 결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경우 범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는 '한명숙 대 박원순'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 전 총리가) 선거에 나오셔야 한다. 안 나오시면 선거가 흥행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6일 박 변호사를 만나 범야권의 단결과 승리를 위한 '상호협력'을 다짐한 바 있다. 한 전 총리의 측근인 황창화 전 국무총리실 정무수석은 "한 전 총리의 고민 지점은 반엠비(MB) 민주평화복지 전선에서 야권의 승리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과, 거기 나서는 후보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경쟁력이 확실한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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