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4

박원순, 민주당 입당 ‘고사’…통합후보된 뒤엔 미지수

범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박원순 변호사가 사실상 독주 체제를 갖췄다.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13일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범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구도는 간명해졌지만, 민주당은 제대로 된 당내 경선을 치르지 못할 위기를 맞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로 찾아온 박 변호사에게 "민주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말했다. 입당 권유였다. 박 변호사의 대답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인 것이었다. 손 대표와 만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과 만난 박 변호사는 "같은 시각을 가진 정파와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입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야권도 혁신하고 시민사회도 폭넓게 참여하는 큰 틀의 정당으로 재편되면 그 과정에서 일원으로 참여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겠다. 이런 이유로 지금으로서 입당은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금으로서는'이란 표현에 주목하고 있다. 이용섭 대변인은 별도 브리핑에서 "박 변호사는 민주당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얘기한 적이 전혀 없다. 박 변호사가 범야권의 통합후보가 되면 민주당 입당도 고민해 볼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해석했다. 박 변호사는 손 대표와의 비공개 회동에서는 '범야권의 통합후보가 된 이후에는 민주당 입당을 고려해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도 박 변호사에게 '민주당의 당심을 얻지 않고서는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어느 후보로 단일화되든 제1야당인 민주당의 당심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통합후보로 선정된 뒤 민주당에 입당하는 과정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박 변호사로선 민주당에 입당하면 '기호 2번'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지만 '안철수 현상'에서 확인된 '정치권 외부인사'라는 참신성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박 변호사 진영 안에서도 민주당 입당의 장단점을 둘러싼 논쟁이 아직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 입당하는 카드도 있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도 "서울시장 선거 전이냐 후냐의 문제이지 박 변호사가 민주당 입당을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고민은 어느 경우에도 박 변호사가 통합경선 이전의 민주당 내부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한 중진 의원은 한 전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의 민주당 경선 상황에 대해 "유치원생들 축구대회에 학부모 말고 누가 구경을 오겠느냐. 민주당 경선이 베이비 경선으로 전락했다"고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 경우 제1야당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또다른 당내 분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려는 인물은 천정배 최고위원과 신계륜 전 의원뿐이다. 두 사람은 14~15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등록일에 후보로 등록할 뜻을 밝혔다. 자천타천 후보 출마 뜻을 밝혔던 다른 이들은 이미 뜻을 접었다. 당 일부에서는 박영선 정책위의장과 원혜영 의원이 출마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원혜영 의원은 지난 8일 한 전 총리의 출마를 권유하는 중진모임에 참석하며 사실상 불참 선언을 했기에 지금 와서 태도를 바꾸기 힘든 상황이다. 박영선 의원도 아직까지는 '불출마'라는 태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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