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3

김정은의 운명, 배급제 부활 여부에 달려

향후 김정은 정권의 성격을 가늠하는 데 있어 "김정은이 배급제 회복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는지가 중요하다"는 견해가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안보부서 당국자는 22일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배급제 회복에 매달린다면 시장을 탄압하고 개혁·개방과는 담쌓고 살겠다는 뜻이고 그 반대라면 긍정적인 신호"라며 "배급제에 대한 김정은의 입장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배급제 강화=반(反) 개혁·개방'

배급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주민들의 충성을 이끌어내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자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이다. '배급 능력'은 '사회 통제력'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1952년 '국가 식량배급에 관한 규정'(내각 결정 56호)을 발표하면서 "국가가 인민의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원칙에 따라 식량 배급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957년에는 '양곡의 자유판매와 개인 상행위 금지' 조치를 발표해 배급제 강화에 나섰다.

배급제는 약 40년간 유지되다 김정일 집권 즈음인 1990년대 중·후반 급속히 붕괴됐다. 대량 아사(餓死) 사태로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배급능력을 상실한 노동당은 유명무실해졌고, 이때부터 김정일은 국방위원회를 앞세워 '선군(先軍) 정치'에 나섰다.

2000년 방중(訪中)을 통해 중국의 발전상을 접한 김정일은 제한적인 개혁·개방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했다. 이때 핵심이 배급제 포기와 장마당 양성화였다. 그러나 장마당 활성화에 따른 외부 사조 유입 등으로 위기를 느낀 김정일은 2005년 개방 조치들을 모두 철회하고 배급제 부활을 명령했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배급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배급제를 부활시킬까?

이후 배급제는 체제 수호의 핵심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서만 제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배급을 받는 '평양'과 각자도생하는 '지방'으로 완전히 쪼개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제적으로 평양은 통제가 되지만 지방은 통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배급으로 살아가는 북한 인구는 평양시민 260만명과 북한군 120만명 등을 합쳐 약 400만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나머지 북한 주민 2000만명은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사(私)경제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했다.

이 같은 북한의 사경제 확대는 배급을 받지 않는 주민들의 경제력을 키웠다. 반면 계획경제 영역 내의 자원들이 시장으로 유출되면서 북한 당국의 재정운용 능력은 크게 약화됐다. 배급제 약화에 따른 시장 확대가 북한 정권의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북한이 2009년 11월 단행한 것이 화폐개혁이었다. 계획경제를 되살려 배급제를 정상화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조치로 돈의 가치가 100분의 1로 하락하고 장마당이 폐쇄되자 주민들의 거센 저항이 이어졌고 결국 화폐개혁은 3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시장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놀란 김정일은 어쩔 수 없이 시장 활동을 용인했지만 언제든 시장을 탄압해 배급제를 되살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며 "김정은이 배급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가 관심거리"라고 했다.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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