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낸 탁월한 학자, 천문학적 매출을 올린 천부적 기업가, 범인이 따라갈 도리 없는 천재적 예술가, 청렴하고 결백하게 국민에게 봉사했다는 정치인을 알고 있다. 그들의 찬란한 결과물들을 우러러보며 우리들은 감탄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오가며 마주치면 겸손하게 미소로 인사하는 이웃들과 묵묵히 제 맡은 일을 다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연말 대기업들의 승진 인사 기사를 쓰고 늦은 밤 지하철을 타고 퇴근길에 올랐다. 어떤 이는 피곤에 지쳐 궁색한 쪽잠에 빠져 있었고 또다른 이들의 취기 어린 눈빛은 불안해 보였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범한 우리가 살아가는, 어제와도 다르지 않고 내일과도 다르지 않을 세상이, 뭔지 모를 이물감으로 다가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신상필벌이 변함없는 인사의 원칙이라고 힘줘 말했다.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 역시 철저하게 성과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했다고 했다. 성과는 기업에서 종교적 신념을 넘어서는 무엇인 것 같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도, 노력이 결실을 맺어 몇년의 인생을 뛰어넘어 임원으로 발탁된 월급쟁이들도 모두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 이익 창출이 목적인 기업이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겠다는 데 토를 달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한 이들은? 별을 단 주인공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웃고 있을 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반세기 샐러리맨의 일과를 마치고 짐을 쌌다.
성과를 못 낸 이는 패배자일 뿐일까. 그리 길지 않은 일회적 삶에서 우리는 어떤 성과를 위해 뛰는 게 옳은 것일까. 잠에 취해 술에 젖어 지하철에 실려가는 저들은 오늘 하루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우리가 아는 평범한 이들 중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노력이 열매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모두가 다르다. 때로 노력은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기도 한다. 아니 노력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도,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숱하게 많다.
성과의 다른 이름은 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성과를 손에 쥐고 웃을 수 있다. 금융기관의 수장에서 물러나 요즘 소일거리나 한다는 한 인사는 "경쟁의 폐해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장경제가 공급은 해결했지만 분배는 망쳤다. 인정해야 한다. 경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폐해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근본적으로 반성해 봐야 할 때라는 거다." 힘겹게 기업을 일궈낸 한 경영인도 "극한의 효율만 추구하다 보면 토양이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득 절벽을 향해 무작정 무리지어 달음질친다는 쥐떼들이 떠올랐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책 에서 1995년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에 대해 적었다. 출퇴근 시간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뿌린 가해자들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회의 경제적 발전이 그대로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실감한 최초의 세대가 이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들이라고. "그들은 먼 교외에 집을 마련하고,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살인적인 만원전차에 시달리며 출퇴근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시간 외 근무까지 하며 소중한 건강과 시간을 소모했다. 직장 내 경쟁은 혹독해서 유급휴가도 변변히 받을 수 없었다. 밤늦게 귀가하면 아이들은 이미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김진철 경제부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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