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아침 교육부 출입기자한테서 "고교 내신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다"는 보고를 받았다.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편집회의에 들고 가서 "이건 내신을 쓸모없게 만들어 외고나 자사고를 키워주려는 정책"이라며 "한 면 정도는 펼쳐서 비판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편집국장은 한술 더 뜬다. "한 면은 모자라니, 두 면으로 갑시다."
솔직히 말해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걸려 있다. 아들이 고1이다. 외고·과학고·자사고 같은 '특별고'가 아니라, 그냥 집 근처 '일반고'에 다닌다. 그런데 녀석이 얼마 전 이러는 거다. "아빠! 나 외고 편입시험 준비해야겠어." 이유를 물었다. "앞으로는 수능, 내신 다 필요 없대. 스펙이 최고래. 그런데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못 해주니 각자 알아서들 하라'는 거야. 그래도 외고는 신경써서 스펙 잘 만들어준대." "컴퓨터 좀 작작 하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무시했지만, 왠지 불안하다. 서점에 가서 논술 참고서 한권을 샀다. 대입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할아버지의 재력도 엄마의 정보력도 없으니, 아비가 논술 첨삭지도라도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웬걸, 주말마다 자느라 참고서에는 먼지만 뽀얗게 쌓여간다.
갈수록 대학입시가 복잡해진다. 입학전형이 3200개라니, 아무리 들여다봐도 '난수표'다. 분명 음모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싹튼다. 교수 하는 친구 녀석 말에 의혹이 커진다. "입학처 교수들이라고 제 자식 생각 안 하겠어? 애들이 대부분 '특별고' 다니니…." 강남 집값이 오르는 건 건교부 실국장들이 다 강남에 집이 있어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학입시도 누구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드느냐를 놓고 특별고와 일반고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이라고 단정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 싶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입시제도를 놓고 진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쟁이 없다는 거다. 제 자식이 고등학생일 때는 다들 목소리 높여 "입시제도가 아이들 잡는다"고 하다가도,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남 일이 돼버린다.
'매트리스의 딜레마'라는 게 있단다. 고속도로에 떨어진 매트리스 때문에 극심한 교통정체가 벌어진다. 다들 "왜 안 치우는 거야"라고 경적을 울려댄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매트리스 앞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려 매트리스를 치우기보다는 살짝 피해버린 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린다. 룸미러를 통해 뒤엉킨 차량 행렬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지도 모른다.
그나마 매트리스를 치운 건 독재자였다. 박정희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과 고교 평준화를 실시했다. 전두환은 본고사를 폐지하고 내신을 도입했다. 그 덕 때문인지는 몰라도, 박지만은 명문 중앙고를 갔고 전효선은 서울대를 갔다. 그래도 손가락질할 일은 아니다. 학살을 자행한 냉혈한들이지만, 자기 자식의 고단함에는 가슴 아팠기에 과감한 개혁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 민주화 시대에는 점점 더 있는 집 자식들이 대학 가기 쉬워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에게 물어보니 "부동산 폭등, 북핵 위기에 밀려 교육문제는 항상 후순위였다. 나중에는 더 악화시키지는 말자는 선에서 그쳤다"고 말한다.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다음 대통령을 고3 학부모 가운데서 뽑을 수는 없다. 박근혜는 아이가 없고, 안철수도 외동딸이 이미 대학 4학년이란다. 그러니 내년 선거 때 입시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나설 사람은 일반고 부모들밖에 없어 보인다. 석달 열흘 국민 토론회를 열어서라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시위로 날이 새고 진다는 한탄도 있는데, 입시 데모 한번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김의겸 사회부장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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