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2

미네르바 “약으로 하루하루 버텨…가족도 파괴”

지난 20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법원 519호 재판정.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경제 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글로 유명세를 탔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33)씨가 증인석에 올랐다. '박대성은 가짜 미네르바'라는 요지의 비방성 글을 인터넷에 올려 모욕·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황아무개(32)씨 등 세 명에 대한 재판이다. 519호는 박씨가 2009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던 바로 그 곳이다.

 증인석에 서자마자 박씨는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깊이 눌러쓴 청색 모자를 벗자 제멋대로 자란 수염 덮인 얼굴이 드러났다. 추운 날씨인데도 외투 없이 하늘색 카디건만 걸쳤다. 바지는 트레이닝복이었다. 2009년 무죄 선고를 받고 구치소에서 출소할 때보다 뺨이 더 움푹 패여있었다.

 박씨에 대한 상대방의 증인심문은 가혹했다. 상대쪽 변호인은 박씨가 포털사이트에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아이디로 쓴 글의 진위 여부를 하나하나 따져 물었다. "영화 ○○를 본 적이 있나요?" "그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이 뭔가요?" "벳푸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요하네스버그는 어느 나라 수도인가요?" "2008년 이전에 일본에 가 본 적이 있나요?" "2008년에 여자친구가 있었나요?" 등등. 박대성씨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또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종종 머리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며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검사가 "공소사실과 관계없다"며 "증인이 인터넷에 쓴 글의 사실 여부를 하나하나 증인대에 세우고 질문한다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이건 고문입니다"라고 항의했지만, 변호사의 질문은 계속됐다.

  30여분의 증인심문이 끝나고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하자 박씨는 울면서 호소했다.

  "이번 일로 저와 가족이 파괴됐습니다. 약(항우울제 등)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3년 동안 손가락질과 모욕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죄송스럽고, 동생은 대인 기피증에 걸렸습니다."

 박씨는 책상에 엎드린 채 4분가량을 흐느껴 울면서 "재판장님, 지난 긴 시간동안, 3년 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점을 선처해주셔서 판결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무죄를 입증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본인의 무죄를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 본인의 피해를 주장하는 자리임에도 박씨는 "무죄를 입증해달라"며 책상에 엎드린 채 울었다. 재판장도 미안한 듯 아무말도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재판 직전 기자와 만난 박씨는 증인 출석의 괴로움을 호소했다. 박씨는 "법원에서 무언가를 받는 순간 울렁거리고 구토가 난다"며 "100여일간의 이유없는 감옥살이에 대한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1년째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박씨는 요즘 집에서도 모자를 쓰고 지낸다.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으면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낮이든, 밤이든 혼자서 나가는 일도 너무 두렵다고 했다.

  재판이 끝나자 박씨는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재판정 문을 밀고 뛰쳐나갔다. 재판이 끝난 뒤 인터뷰를 더 진행하기로 했지만 "더 이상 못 하겠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느냐"고 말하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28일 박대성씨가 헌법소원을 제기함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났다. 이 판결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장애물을 한 단계 걷어올린 '올해의 판결'로 여러 단체들이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씨의 삶은 현재 한 치 나아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전문대 졸업' 등 신상과 실명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박씨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은 온라인 상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겨우 전문대'라는 편견과 그에 대한 욕설을 박씨는 견디기 힘들었다. 인터넷상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올린 글을 박씨의 허락 없이 모아서 출판해 부당이득을 취한 사람도 있었다.

 재판에 출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사람들로부터 구타를 당할 뻔도 했다. 박씨의 재판 등을 돕는 박찬종 변호사 보좌역 김승민씨는 "온라인상의 협박을 넘어서서 직접적으로 물리적 위협도 가해지자, 이후부터 박씨가 두려움을 심하게 느끼고 우울증도 심해졌다"고 말했다. 박씨의 변호를 담당했던 박찬종 변호사 역시 "인터넷에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구속당했고, 그 상처를 지금까지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국가의 배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씨는 지난 4월19일 법원에 104일간의 구금에 대한 형사보상금 청구서를 제출했지만 보상금 지급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박씨의 형사보상금 청구를 담당하고 있는 안효상 한우리법률사무소 국장은 "보통 형사보상금 청구는 3개월 정도면 지급되는데 박대성씨 사건의 경우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이어서인지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검찰 측에서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법원의 요구에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치검찰의 무리한 법 집행으로 철저히 짓밟힌 한 젊은이의 영혼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파멸의 나락을 헤매고 있다. 그를 기소한 검사들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도덕적인 정권' 치하의 '공정사회' 한국, 그 민낯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일러스트 김영훈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