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1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백두혈통 아니면 통치 못해… 김정은 실권 강화될 것”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백두혈통 아니면 통치 못해… 김정은 실권 강화될 것"

news.khan.co.kr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66·사진)은 20일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놓고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일이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그것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 풀려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망) 하루 만에 (조의 표명이) 나온 것은 좋은 일이고 적절한 조치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 해줌으로써 북·미 접촉이 탄력을 받을 수 있고 6자회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한·미 간 긴밀한 접촉을 하면서 북·미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미국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햇볕이 비칠 때 건초를 말릴 수 있다. 북한이 어려울 때 손을 내민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정부가 북한 주민을 위로했지만, 조문단 파견은 하지 않기로 했다.

"북한이 해외 조문단을 안 받겠다는데 들어갈 수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는 조문단을 안 받고, 자기들끼리 장중하게 하는 게 관례다. 안 보내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북한이 섭섭했던 것은 정상회담까지 예정됐었는데, 조의도 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 주민을 위로했다. 정부가 남은 기간이라도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는 출발선이 될 것이다. 정부가 6자회담에서 북한을 만나는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이번에 조의를 표시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본다."

- 하지만 남북관계는 더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가 은밀하게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정상회담도 어려워졌다.

"김정은이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리니까 (정상회담은) 국민 정서상 안 맞을 것이다. 동양의 관념으로 조금 어렵게 됐다. 차라리 과거에 있었던 장관급 회담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관리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어달라. 북핵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을 자주 만나서 엉뚱한 길로 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낙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지만, 잘 관리하면 (남북관계가) 좋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는 입장을 하나씩 취하면 한반도 상황은 나빠질 것은 없다."

- 현재 상황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와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북·미 간 핫 이슈가 핵문제고 남북관계가 경직돼 있다는 점에서 그때와 현재 상황이 흡사하다. 당시에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에서 핵문제를 가지고 협상을 벌였는데, 현재 미국도 북한과 6자회담 재개를 협상하고 있다. 22일로 예정됐던 북·미 간 3차 접촉은 연기되겠지만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6자회담으로 갈 수 있는 틀이 예상보다 빨리 잡힐 수 있다. 물론 카터의 방북으로 1994년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됐던 사실은 현재와 다르지만, 크게 볼 때 상황의 차이가 크지 않다."

-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정부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클린턴 정부의 북핵 정책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클린턴 정부는 김 주석 사후 북한의 어려운 점을 '십이분' 활용했다. 경수로 건설과 수교협상을 해달라는 북한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핵문제에 협조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현재 미국도 북한을 잘 구슬러 6자회담 재개 합의를 끌어내고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지원과 북·미수교 및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우리도 그런 흐름을 비켜 갈 수는 없다. (그간) 남북 간 접촉이 었었던 만큼 우리가 직접 판을 짤 수는 없지만, (북·미 대화에 대해)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 북한이 북·미 접촉에 적극적으로 응할 것으로 보나.

"그렇다. 미국이 나서면 북한은 거기에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자기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고 외교적 고립을, 외교적 어려움을 푸는 그런 어떤 탈출구로 활용하리라고 본다."

- 정치적으로 미국이나 한국도 대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다음 대선 때문에 북핵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한다. 한국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 정부도 북한을 강하게 밀어붙여서 재미도 못 보지 않았느냐. 어려운 시기에 남쪽에서 압박이 들어온다는 의식을 북한이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 '김정은 체제'가 안착할 수 있겠는가.

"자연인 김정은으로 보지 마라. 김정은 한 사람의 퍼스낼리티나 포텐셜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이 아니면 북한을 대표할 수 없는 게 현재 북한의 정치문화다. 상징성 면에서 누가 도전할 수 없을 것이다. 군권도 김정은 중심으로 개편됐다. 북한 정치문화의 맥락에서 볼 때 하루아침에 거부당하거나 밀려날 여지는 없다고 본다. 나이가 어려서 결격사유가 있고 그것 때문에 권력투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의 정치문화 특성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 김정일 위원장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고모부인 장성택이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이고, 당의 행정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고모인 김경희는 당의 경공업부장이다. 후견인인 두 사람이 섭정형식으로 통치를 하면서 점차 김정은의 실권이 강화되는 그런 상황으로 발전되어 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아마 절대로 다른 사람이 권력을 분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 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내년에 목표로 했던 '강성대국'을 이루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지 않겠는가.

"강성대국이란 말이 강성국가로 바뀌었다. 중앙통신에 2~3번인가 나왔다. 슬그머니 목표를 하향조정한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신중하고 용어 선택을 할 때 보면 책잡힐 소리를 안 한다. 또 내년에 어려워지더라도 갑작스럽게 김 위원장이 사망해서 (강성국가 실현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변명할 수 있다. 북한 당국에선 변명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가 극복해야 할 위기는 무엇인가.

"경제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다. 대처를 잘 못하면 주민들의 지지가 조금씩 내려가고 힘이 빠질 수 있다. 특히 핵문제를 잘못 다뤄서 미국 등 외부로부터 강한 제재와 압박이 계속된다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고, 경제난의 해소 기미가 안 보인다면 책임문제가 불거져 북한 내부에서 세력교체가 있을 수 있다. 현재의 후견인들이 2선으로 물러나고 더 강경파나, 더 온건파가 나올 수 있다."

- 김정은 시대에 개혁·개방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폐쇄사회가 개혁·개방을 하는 필요충분조건은 개방을 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인 보장이 확실할 때다. 현재처럼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에선 개방을 기대할 수 없다. 북한이 자진해서 문을 열 것 같지 않다. 6자회담을 통해서 북·미관계가 개선 조짐을 보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서 군사적으로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야 개방·개혁으로 갈 수 있다. 북한이 경제나 풀어보자고 빗장을 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갈 것 같나.

"대중·대러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가 난망할 때의 대체재나 보완재다. 미국과의 관계가 풀리면 한방에 끝나는 것이다. 대미관계가 잘되면 중국과 러시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내려가게 돼 있다."

- 한나라당 등 여권 일각에선 북한 체제 붕괴 등 급변사태를 예상하기도 한다.

"(붕괴되려면) 밖의 정보가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아랍 세계만 해도 외국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지 않은가. 동독만 해도 서독과의 교류협력이 얼마나 활발했었나. 북한은 핵문제 등을 이유로 밖으로부터 빗장이 걸리고 안에서도 빗장을 걸어놨다. 정보가 차단된 곳에서 체제 불만이 쌓일 수 있겠는가. 북한 같은 나라에선 (붕괴가) 안 일어난다. (튀니지 등 중동 곳곳에서 분출됐던) 재스민 혁명 같은 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어도 당분간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Original Page: http://t.co/QbOw03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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