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김정일 사후를 보는 진보·보수의 시각과 제언
hani.co.kr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앞날에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앞으로 북한 내부를 비롯한 한반도의 정세는 어떻게 전개될지, 이명박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김정일 사후를 바라보는 진보·보수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다.
'기회의 창'은 열려 있다
보수진영이 흡수통일의 비현실성
깨닫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 계기
한·미의 조의 표명, 인도적 지원,
'키 리졸브' 중단 등 과감한 조처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로 올라선 김정은이 과연 권력을 순조롭게 장악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북한 권력구도에 불확실성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점차 '김정은+집단지도' 체제로 안착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 여부는 북한 내부의 동학(動學) 못지않게 외부와의 상호작용도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북한의 안정적인 권력승계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 내 돌발상황 발생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통제력 상실로 이어질 것을 가장 우려한다. 미국이 대북 감시태세(워치콘)와 방어태세(데프콘)를 격상하지 않기로 한 것도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략적 최우선순위는 당연히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유지·관리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신속하게 조의를 표하고 북한과의 우호협력관계 발전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두 나라는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들도 휘말릴 수밖에 없는 한반도 무력충돌 방지에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김정일의 급사라는 돌발변수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중 '협력'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단절된 남북관계는 대북 정보망마저 '먹통'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대북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정일의 사망을 통일의 호기로 바라봤던 굴절된 믿음은 한반도의 급변사태를 원하지 않는 미국과 중국의 견제에 직면해 있다. 하여 이명박 정부와 보수진영이 현실로 다가온 '김정일 사후의 북한'을 흡수통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자해적인 것인가를 깨닫는다면, 김 위원장의 사망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중요한 출발점은 한-미 공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조처를 취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양국이 북한에 조의를 표명해야 한다. 양국의 조의 표명은 김정은 체제와의 신뢰구축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양국 내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이명박 정부의 조의 표명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줄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북 인도적 지원과 대화 재개의 로드맵을 짜야 한다. 북·미 양국은 대북 식량지원과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 일시 중단을 골자로 한 북-미 대화를 예정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일각에서도 유연한 대북 접근을 모색했었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이러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지만, 더 능동적인 자세로 교착 국면을 타개할 준비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의 조문 국면이 누그러지는 시점에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 그리고 6자회담 재개가 선순환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대북 지원도 조속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김 위원장의 사망을 알리면서 남북의 합의와 주변국들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의사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서 '기회의 창'은 분명 열려 있다.
끝으로 한·미 양국이 대규모의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중단을 전격 발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 이는 북한의 신생 정권에 적대적인 의도가 없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자, 더욱 불확실해진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20년 전 한·미 양국 정부의 '팀 스피릿' 중단 선언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가져왔던 사례를 이명박·오바마 대통령이 떠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핵포기·민주화 유도해야
성공적 권력승계 가능성 높지만
급변사태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개혁·개방이 남북의 공생공영에
기여하리란 점을 적극 설득해야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37년간 북한을 철권통치해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7일 사망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면서 경제난 극복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의욕적으로 활동했던 김정일은 난마처럼 얽혀 있는 대내외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게 되었지만 김정일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까지 상속받게 되어 북한의 앞날은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소련 및 동유럽 공산정권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 등 안팎으로 처한 최대의 위기상황에서 북한 체제를 굳건히 지키면서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대가도 만만치 않다. 핵개발로 인해 국제적 고립과 남북관계의 후퇴를 자초했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김정일이 물려준 유산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최근 미-북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재개하고 북한은 우라늄 농축 계획을 중단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북핵문제 해결에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은 북한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에도 협조적 자세를 보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도 예상되고 있었다. 즉,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핵문제와 미-북 및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전환기적 상황에서 김정일이 사망한 것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8년 김정일의 뇌졸중 이후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을 준비해 왔으나, 당과 군에서 아무런 경력도 없는 29살의 김정은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아시아로 불어올 가능성, 중국을 통한 황색바람과 한류의 유입, 지속되고 있는 경제난과 식량난, 핵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박 등 김정은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여 경제난과 식량난을 해결하면서도 내부 결속과 권력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미국과의 핵협상에 성공하여 미-북 및 일-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후계체제의 안정성과 지속성 확보에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외교협회(CFR)는 권력승계, 승계 경쟁 및 승계 실패 등 세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는 장성택 또는 군부의 후견으로 김정은이 권력승계에 성공하는 것이며, 둘째는 당 또는 군부의 실세들이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반발하여 권력투쟁 상황에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는 김정은이 권력승계에 실패하고 급격한 체제붕괴 또는 내전상태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 중에서 김정은이 성공적으로 권력을 승계하는 첫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당과 군의 요직에 지지세력을 포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당분간 김정은은 군의 지지를 기반으로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북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내부 권력투쟁 또는 급변사태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북한 내의 핵무기와 핵물질이 통제되지 않는 집단에 넘어갈 경우 우리의 안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대량살상무기의 안전한 관리와 통제를 위한 한-미 연합작전계획의 수립이 시급하다. 국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군 상부구조개편 관련 법안개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과 민주화의 길로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가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한반도의 평화 유지와 남북 공생공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유연성을 넓히는 지혜도 필요하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선도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Original Page: http://t.co/D2eZlK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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