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9

[고종석 칼럼] 앞으로 한 해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꼭 한 해 앞으로 다가왔다. 그사이 이명박 대통령이 큰 흉사를 겪지 않는 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2012년 12월19일 이 나라의 제18대 대통령을 뽑는다. 지난 네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를 내다보기 알맞은 아침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이득을 얻는 이가 있으면 밑지는 이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훔쳐온다면, 지난 네 해는 99% 한국인들에겐 나쁜 시절이었고, 나머지 1% 한국인들에겐 호시절이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기도 전에 '기업 프렌들리'라는 걸 내세웠으나, 그가 우애를 건넨 1% 대한민국에 중소기업이 끼일 자리는 없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시장친화적 정권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권은 극소수 대자본이나 우호적 연성권력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서슴없이 시장의 규칙을 깨고 개입했다. 이런 편의주의는 이달 초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의 허가 과정에서도 확연했다. 그러나 크게 보아 대한민국은 이 정권에 이르러 말 그대로 '주식회사'가 되었다. 지난 네 해 동안 극소수의 대주주는 만세동락을 누리는 듯 보였고, 대부분의 소액 주주는 절망에 허덕였다. 대주주들도 뭔가를 고르게 누리진 못했다. 정권 초기에 등장한 '고소영', '강부자' 또는 '영포라인'이라는 말에 설령 과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정권의 인사정책은 그야말로 사사로운 인연에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 개인에게 붙은 '독재자'라는 딱지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독재자라는 말은 단임 대통령 이명박에게는 과하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가 만신창이가 된 사실이 상징하듯, 이 나라의 인권 상황은 이전 정권들 때에 견주어 크게 악화했다. 청와대가 선거 부정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것은 명백한 퇴행이지만, 되돌릴 수 없는 퇴행은 아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에 끌려가면서도 고문을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을 아직 잃지 않았고, 백주의 저잣거리나 일터에서 구속될 걱정 없이 대통령 개인을 욕할 수도 있다.

이 정권이 크게 저항하지 않았고 저항할 필요도 없었던 경로의존성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의 주류화는 이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회전문 인사'는 이전 정권에도 있었다. 이 정권이 무능과 뻔뻔함에 이끌려 워낙 죽을 쑨데다 직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겹쳐져, '구관이 명관'이라는 감정이 유권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물론이고 노무현 정부도 이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정권은 아니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불평등 조항들은 노무현 정권이 그 협정을 체결했을 때부터 이미 독니를 드러내고 있었음을. 그리고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정권의 노동 인권 경시 역시 이전 정권의 노동정책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임을.

물론 그런 사실들이 이명박 정권의 도드라진 실정을 감출 수는 없다. 한국 처지에선 한층 악화된 조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그리고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소위 4대강 사업은 이 정권에 새겨진 주홍글씨의 상징을 넘어서 다음 정권, 그다음 정권에까지 커다란 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짐을 질 각오를 하면서도 권력을 잡으려는 정파들의 안간힘으로 여의도 정가는 부산하다. 한나라당은 연이은 악재로 나둥그러지기를 되풀이하다 박근혜 의원이 직접 나서서 키를 잡았고, 범야권은 이념과 정책을 밀쳐놓은 채 선거를 겨눈 합종연횡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네 해 동안 한국 정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던 '박근혜 대세론'이 잦아들면서, 차기 대권을 향한 정파들의 움직임은 지금보다 훨씬 현란해질 것이다.

직업정치인이 아닌 이상 사람이 정치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밥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고, 생명체의 본능에 따라 연애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우리 일상도 깊이 들여다보면 흔히 넓은 의미의 정치가 규정한다. 사람이 괜히 정치적 동물인 게 아니다. 이 정치적 동물의 정치적 사유는 정치적 성찰을 포함한다. 내년 오늘, 그 성찰의 열매로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나은 권력집단이 대한민국에 태어나길 기원한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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