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틀간 '김정은 체제' 이양 위해 내부 정비한듯
청와대선 대통령 생일파티·국방장관은 의원 회동중
통일·외교부 '엉뚱한 추측'…미국도 사전정보 없던듯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북한 체제의 폐쇄성과 함께 한국 정부의 느슨함이 동시에 부각됐다. 북한이 최고지도자 사망 소식을 52시간 만에 알리며 체제의 특수성을 보여줬다면, 한국 정부는 아무런 준비 없이 큰 뉴스를 접하고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여 '정보력 부재'를 둘러싼 뒷말이 나온다.
■ 북, 이틀 이상 지난 뒤 공식 발표 북한 당국이 밝힌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시각은 17일 오전 8시30분이다. 여기서 꼬박 이틀이 지난 뒤인 19일 오전 10시에야 , , 은 "오늘 12시에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특별방송이 있겠습니다"라고 예고했다. 10시23분과 30분에도 거듭 특별방송이 예고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움직임이었다. 는 평일 오후 5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데 9시부터 방송을 내보냈으며, 북한 방송사들의 집단적인 특별방송 예고는 김일성 전 주석 사망 때가 유일했다.
북한은 일선 군부대에도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일 오전 동부전선을 다녀온 합참 한 관계자는 "북한군 부대에 아무런 특이 동향이 없었다. 조기도 내걸려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사망과 발표 사이 이틀이라는 시간은 '김정은 체제'로 가기 위한 내부 정비 기간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 위원장) 사망을 이틀 뒤에 발표한 것은 급박한 사태를 체계적으로 준비한 흔적으로 보인다"며 "그 시간 동안 김정은을 중심으로 측근이나 내각, 군, 당에서 합의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 청와대는 생일파티, 국방장관은 국회에 김 위원장 사망 이틀이 넘도록 정부는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71번째 생일과 41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축하모임이 열렸다. 직원 200여명이 모여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일부는 고깔모자를 쓰고 이 대통령 부부를 축하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직원들과 경내에서 생일축하 오찬을 하려다 급히 취소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군 상부구조개편안 협의 차 국회에서 의원들을 만나다가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국방부로 복귀했다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했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애초 예정돼 있던 전방부대 시찰 일정을 소화하다가 오후 2시쯤 서울 삼각지 합참 청사로 복귀했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도 '특별방송 예고'와 관련해 "북·미 베이징 협상 결과나 6자회담, 전방 지역 성탄트리 점등 경고 아니겠느냐"며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통일부 관계자가 기자들과 함께 북한 텔레비전을 모니터하다 북한 아나운서가 검은 옷을 입고 나오자 사색이 돼 장관실로 직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남북관계나 내부 인사와 관련한 발표일 것 같다"는 엉뚱한 추측을 내놓았다.
미국 쪽도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별다른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박희태 국회의장을 예방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발효 등과 관련해 얘기를 나눴지만, 김 위원장 사망 등 북한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오가지 않았다고 의장실이 밝혔다.
■ 대북 정보기관 '구멍' 뚫렸나? 북한의 철통보안에도 불구하고, 정보기관들의 정보력 부재는 문제가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동선 파악은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업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 등은 미국 쪽의 도움으로 김정일 특별열차의 동선을 파악하거나 주변인물을 포섭해 김 위원장의 동선이나 신상을 파악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기존 수십년치 동선 정보를 축적해 판단에 활용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나 정보사 등은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정부 쪽에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등 핵심 당국자들의 이날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이순혁 권혁철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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