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는 사람들도 나한테 '불쌍하다'며 '괜찮으냐'고 한다. '불쌍가련'의 대명사가 됐다."
16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기자들과 임기 마지막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웃으면서 한 농담이었지만, 진심이 배어 있었다. 외롭게 선 그의 처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18일 민주통합당 임시지도부에 당권을 넘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방을 향해 떠난다. 앞으로의 정국 구상을 위해서다. 내년 4월 총선 구상이 1차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2월 대선의 본선 티켓을 따기 위해서는 총선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수도권 경쟁력을 내보여야 한다.
여건은 불리하다. 당대표 시절 구축된 '손학규 사단'은 사실상 해체됐다. 서울시장 경선 직후의 사퇴 소동과 야권 통합 과정에서의 당내 힘싸움 과정 등을 거치며 하나둘 떠났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끌어내는 원심력이 손 대표가 장악하는 구심력보다 컸던 탓이다.
지지율도 한자릿수다. 지난 4·27 재보궐선거에서 분당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직후 16~17%였던 지지율은 3분의 1 토막이 났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장을 넘어야 한다. 두 사람은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손 대표보다 지지도가 높다. 손 대표가 내년 12월 대선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점치는 정치전문가들이 드문 게 냉엄한 현실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손 대표는 리더십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난달 2일 민주당 중앙위원회 직후 손 대표가 또다시 사퇴를 고민하자, "그래서 경기고-서울대 출신이란 말을 듣는 것"이란 모진 소리를 했다고 한다.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사분오열되기 마련인 야당의 가닥을 꽉 쥐고 갈 수 있는 아귀 힘을 기르라는 주문이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난해 10월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손 대표의 임무는 민주당을 혁신하고 통합하는 일이었다"며 "좋은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그 절반인 통합밖에 이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대표로 선출된 지난해 10월은 6·10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을 기반으로 당을 바꾸기에 좋은 기회였다. 강력한 대여 투쟁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민주당은 그러지 못했다. 분당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직후 또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손 대표는 지난 5월 직접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당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천은 느렸다. 번번이 때를 놓쳤다. 영입과 통합의 대상들은 버텼고, 손 대표는 그들을 모을 힘이 부쳤다.
그래도 통합은 해냈다. 그에게 남은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그에게 혁신이 또다른 과제로 남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의 한 측근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서 확인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 혁신이 아닌, 한국 정치의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손 대표가 지방에 머물며 정치문화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답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걸 국민에게 어떻게 펼쳐 보이느냐가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전당대회가 열리던 지난 11일 오전 친구였던 조영래 변호사의 묘소를 찾았다고 한다. 인권변호사의 상징인 조 변호사의 기일이었다. 그는 먼저 간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갈 길에 대한 각오를 밝히지 않았을까. 그 길은 아직 짙은 안개가 낀 내년 12월 대선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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