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3

[조선데스크] 유통기한 4년짜리 제1당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른 총선 여섯 번에서 원내(院內) 다수당, 즉 제1당의 이름이 매번 달랐다. 1988년 민정당, 1992년 민자당, 1996년 신한국당, 2000년 한나라당, 2004년 열린우리당, 2008년 한나라당 등이다. 제1당의 '유통기한'이 4년을 넘긴 적이 없었던 셈이다. 이는 총선 패배보다 '재창당'에 따른 당명(黨名) 변경의 영향이 더 컸다.

내년 4월에 실시될 19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계속 제1당 자리에 있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요즘 당 지지율로는 원내 다수당을 꿈도 꾸기 힘들 뿐 아니라, 당 간판을 바꾸는 자구책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리서치의 지난달 전국 4000명 대상 조사 결과, 총선에서 찍고 싶은 후보의 정당은 '안철수 신당' 36%, '한나라당' 24%, '민주당 등 야권' 16%, '모르겠다' 24%였다. 16개 시·도별로는 한나라당이 대구·경북·경남에서만 선두였고 나머지 13곳은 모두 열세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신당을 만들지 않더라도 국민 과반수인 반여(反與) 성향 유권자는 4개월 뒤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 조사 말고도 최근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층이 '마(魔)의 24%' 벽에 갇혀 있는 것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얻은 187만표를 전체 서울 유권자 비율로 환산하면 23%였다. 지난달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대선 후보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유권자, 즉 친여(親與) 고정층도 24%였다. 투표 열기가 높아져서 내년 총선 투표율이 70%에 이를 경우 한나라당은 23~24% 지지율로는 전체 투표자 중 득표율이 33% 안팎에 그쳐, 개헌 저지선인 100석(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얻기도 빠듯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04년 탄핵 역풍 직후 당 대표를 맡아 치른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이라도 지켜달라"고 했던 호소를 8년 만에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고운 것도 아니다. 지지율이 20%에도 못 미치는 야권은 자력 승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철수 바람'과 '야권 통합'에 기대어 승기(勝機)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에선 민주당과 친노(親盧) 시민통합당 및 한국노총의 합당(合黨)에 국민 다수인 66%가 '관심 없다'(46%) 또는 '반대한다'(20%)고 했다. 민주당은 전신(前身)인 열린우리당이 '100년 정당'을 내걸었다가 3년 9개월 만에 해체하고 만든 정당이고, 이번 합당에 의해 민주통합당으로 바뀐 것은 2000년 이후 여섯 번째 개명(改名)이다. 한나라당도 1년 전 창당 13주년 기념식에서 "100년 정당으로 뿌리내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폐업 일보 직전이다. 100년은커녕 국회 임기 4년 동안이라도 국민 다수의 신뢰를 잃지 않고 버티는 정당이 언제쯤 우리 정당사(史)에 나타날지 궁금하다.

/홍영림 여론조사팀장 yl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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