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6

[세상 읽기] 그날 연평도에선 무슨 일이? / 김종대

나폴레옹은 "똑똑한 장군 2명보다 멍청한 장군 1명이 지휘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 적 있다. 군대만큼 '지휘 통일'이 엄격히 요구되는 조직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서해만큼 이 경구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곳도 없다. 특수하고 복잡한 서북해역의 작전환경은 아무리 군사전문가들이라도 동시에 의견을 통일하기가 불가능하다. 작전에 간섭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혼란은 가중되고 군대는 갈팡질팡한다.

짙은 해무로 1㎞ 밖의 바다도 보이지 않는 8월10일의 연평도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오후 1시께 북이 3발의 포탄을 쏘았는데 그 장소가 묘한 곳이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레이더로도 탐지되지 않는 장소인 북방한계선(NLL) 근처였다. 아주 애매한 상황인데도 해병대 연평부대는 즉각 대응사격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뒤이어 열린 화상회의에서 우리 군의 즐비한 별들이 각기 다른 의견으로 해병대 연평부대장(대령)을 지휘하려고 했다. 8월22일치 기사를 보면 '엔엘엘 이북으로 10발 사격'(해군 작전사령관), '엔엘엘 이남으로 10발 사격'(2함대사령관), '엔엘엘 이남으로 3발 사격'(서방사령관)과 같이 전혀 다른 의견이 튀어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대응의 범위가 엔엘엘 이북이냐 이남이냐는 예민한 서북도서 정세에서 결정적인 문제다. 확전을 불사하느냐, 적절한 수준에서 종결하느냐의 차이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화상회의 당시에 해군과 해병대 고위 장성들이 각기 자신이 연평도 상황을 통제하는 지휘관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대응은 현장 지휘관의 권한'이라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고위 장성들이 '내가 이렇게 연평부대에 지시했다'고 화상회의에서 주장하는 부적절한 행태가 나왔다. '나도 한칼 있다'며 각기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별들의 신경전이다.

이제껏 서해에서는 북의 군사적 위협이 하나의 축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우리의 복잡한 지휘체계라는 양대 축이 서해 위기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99년의 제1연평해전 당시 해군 2함대사령관(소장)은 합참의장(대장), 합참작전본부장(중장), 해군작전사령관(중장)이라는 10개의 별로부터 간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합참이 2함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장이 없는 수송함을 현장에 출동시키도록 지시하여 상황이 악화했다. 현장 지휘관에게 맡기면 될 것을 합참과 작전사령부의 힘센 장성이 '어떤 무기체계를 동원해라', '어떤 전투대형을 유지하라'고 각기 '미세 간섭'을 한 것이다. 이후 서해의 사건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서해에서 위기관리에 실패하는 핵심 이유다.

99년에 예방할 수도 있었던 남북 교전이 한번 발생하자 그 순간 서해는 '평화의 바다'에서 '분쟁의 바다'로 바뀌었다. 이번에 해군의 강경대응 주장을 등에 업은 보수언론까지 연평부대의 '미흡한 대응'을 부각시키는 데 가세해 엉뚱한 논란을 점화시켰다. 환자는 한명인데 각기 수술하겠다고 덤벼든 의사들이 옥신각신하는 동안 환자가 사망하는 격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지휘의 효율화'를 외치는 군 상부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중에 서해에서는 새로운 '지휘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국방장관이라 할 수 있는 김격식 대장은 해주에 직접 내려와 지휘를 한다. 바로 그가 현장 지휘관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울과 평택과 진해에서 전화통으로만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이미 이중 삼중 경호를 받고 있는 국방장관이 북한의 암살조 위협에 경호조처를 더 강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위험에 처한 당사자는 군 수뇌부가 아니라 그의 부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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