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례적인 정치도박이 실패로 막을 내렸다.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다만 그의 빛나는 연기를 한동안 볼 수 없을까 봐 아쉽다. 재임기간 내내 내 눈에 비친 그는 시장이라기보다는 일급 연극배우였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셔츠 아래로 내비치는 단단한 근육, 요즘말로 '비주얼'이 돋보이는 건강한 호남이다. 게다가 필요하면 카메라 앞에 무릎 꿇고 즉석 눈물도 짜낼 줄 아는 감성의 소유자다.
오세훈의 능란한 연기를 보면서 셰익스피어의 가 떠올랐다. 는 셰익스피어의 사극 가운데 영국 밖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작품이 담은 시공을 초월하는 교훈과 함께 주인공의 유난한 매력 때문이다. 리처드는 의 이아고와 함께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캐릭터 중에 가장 빛나는 악한이다. 권력욕에 미친 그는 권모술수의 달인이다. 왕위 승계의 서열이 한참이나 처진 그는 모략, 회유, 폭력, 애소, 암살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권좌에 오르나 끝내 파멸을 맞는다. 작가는 성격파탄자 리처드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그를 불구로 만들었다. 신체적 불구가 내면의 불구로 이어진 악인으로 그린 것이다. 그의 책략은 관객을 흥분시키고 구사하는 언어와 유머는 잔인하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적재적소마다 임기응변하는 탁월한 연기의 소유자다. 이런 배역이기에 로렌스 올리비에나 이언 매켈런 같은 대배우가 아니면 좀체 소화해내기 힘든 배역이다.
리처드는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이 남편을 죽인 여인에게 구애한다. 좀체 상황이 풀리지 않자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다. 공손하게 여인 앞에 꿇어앉아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내준다. 그러고선 앞가슴을 열어젖히고 나를 찌르라고 청한다. "당신 남편을 내가 죽였소. 그렇지만 그렇게 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대의 미모였소." 유혹에 성공한 리처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대체 이런 솜씨로 여자의 마음을 뺏는 사내가 어디 또 있을까. 이제 내 것이 되었어. 하지만 오래 가질 생각은 없어." 결국 그는 새 여인을 구하기 위해 왕비를 죽인다. 행여 오세훈이 서울시민을 상대로 구애에 성공했더라면 또다른 리처드가 되지나 않았을까? 더 높고 더 많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련 없이 '시민'을 버리지나 않았을까?
오세훈의 도박은 일단 실패했지만 크게 보면 결코 '헛소동'은 아니었다. 느닷없는 물벼락에도 강남은 건재하다. '내 돈 내고 내 아이 밥 먹여서 나랏돈 축내지 않겠다'는 대의도 일견 그럴듯하지 않은가. 애당초 '주민투표'는 무리한 발상이었다. '의무교육'에 '무상급식'은 원론이고, 보편적 복지는 진보·보수를 떠나 이미 시대 조류가 되지 않았는가? 시장의 권한인지도 명백하지 않다. 투표지의 문구도 정직하지 않았다.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않겠다.' 현실적인 계산이다. 젊은 그에게 5년은 잠시다.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 잃을 게 없다. 마음은 오래전에 시청을 떠나 청와대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으니.
'태양빛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의 찬란한 수사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에 대한 세인의 아쉬움은 신화와 전설 속으로 물러난다. 그러나 길게 보아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떠난다고 통곡할 사람도 없다. 뭇 야심가들이 줄서 있으니. 그러나 오세훈이 출연할 역사 드라마는 단지 한 막이 내렸을 뿐이다. 결코 리처드 3세의 종말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무대에 복귀하기 바란다. 다만 연기보다 진정으로, 외향보다 내실로, 영리한 법률가보다는 큰 정치인으로 되돌아오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1909년 '시례구사비아'(時禮求斯比亞)의 격언으로 이 땅에 처음 소개된 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현명한 사람은 구름을 보면 비옷을 준비한다." 극 속에서 시민이 한 말이었다. 오세훈이 비울 그 자리에 시민은 시장을 원하지, 차기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번의 선례만으로 충분히 넘치는 교육이 아니었던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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