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회의실에선 때 아닌 한국은행 총재 명칭 변경 논쟁이 벌어졌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일제 강점기 한은 총재란 명칭을 '한국은행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맞서 김재천 한은 부총재보는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재정부가 1950년부터 61년 동안 써온 한은 총재 명칭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발단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총재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민주화 사회에 맞지 않는다.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언급이 있은 지 엿새 만인 22일 재정부는 한은법 개정을 논의하는 경제재정소위에서 총재 명칭 변경의 필요성을 제안했고, 이날 소위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재정부는 총재란 명칭이 청산해야 할 "일제 강점기 잔재", "구시대적, 권위주의적 색채"라며 대안으로 한국은행장을 제안했다. 중국도 '은행장'을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정부는 내부적으로 한국은행 대표, 금통위 의장 등도 검토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재정부는 일제 강점기 조선은행이 총재 명칭을 썼고, 일본은행이 이를 사용한 점을 들어서 총재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한은은 명칭을 바꾸면 화폐 발행권자를 새로 새겨넣는 데 비용이 너무 크다며 반대했다. 현재 1000원~5만원권 화폐의 발행권자가 한은 총재이기 때문이다. 한은의 계산대로라면 화폐 60억7000만장을 교체하는 데 2000여억원과 2년여의 시간이 걸린다. 이와 별도로 전국 4만5000대의 은행 현금자동인출기(CD)와 6만2000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이 새 화폐를 인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20만~30만대로 추정되는 자동판매기도 비슷한 상황이다. 또 한은은 일본뿐 아니라 대만·홍콩 등 한자문화권 중앙은행들이 총재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며, 중국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반박했다.
한은 반발로 이날 논의는 결론 없이 끝났다. 국회는 9월 정기국회 때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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