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7

재정 적자 정책 더 이상 힘 못 쓴다- 이종태// 시사인 205호, [205호] 2011.08.22 08:58:27


재정 적자 정책 더 이상 힘 못 쓴다
[205호] 2011.08.22  08:58:27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각국의 재정 적자 정책이다. 불황기에는 기업 이윤이 줄고 실업자도 많아지기 때문에 세수(정부 수입)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사용해야 할 돈(실업보험 등 복지급여, 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 등)은 오히려 늘어난다. 그래서 국채 발행 등으로 빚을 내 민간 부문에 투입하면서 재정 적자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늘어 불황기에 진 정부 부채를 갚을 수 있다.

그러나 부채를 통한 정부 지출은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는 것이, 세계 경제학계의 주류인 신고전학파의 주장이다. 대표 논객으로는 하버드 대학 로버트 배로 교수가 있다. 그에 따르면 정부가 빚을 내는 경우, 가계와 기업은 미래의 세금 부담(정부 부채를 상환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현재의 소비(가계)와 투자(기업)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가 재정 적자 정책으로 돈을 뿌려봤자, 민간이 그만큼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기부양 효과는 사라져버린다. 쓸데없이 개인들의 자립심만 해치고 정부의 빚만 늘릴 뿐이다. 재정 적자 정책이야말로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 돌아갈 시장을 망치는 포퓰리즘인 것이다.


  
신고전학파의 대표 논객인 로버트 배로 하버드 대학 교수.
그런데 현실 세계의 가계와 기업이 배로 교수의 주장처럼 움직이는지는 미지수다. 실업급여를 받았을 때 ‘이 돈은 정부가 부채로 마련한 것이고 3년 뒤의 소득세가 100만원 상당 늘어날 것이므로 그만큼 소비를 줄이자’고 결심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론이 각국의 복지 및 각종 경기부양 정책을 공격하는 보수주의의 위력적 무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올해 들어 ‘재정 적자 폐기’(재정 긴축)는 거의 모든 산업국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 심지어 미국 공화당의 매파들은 이번 정부 부채 상한 협상에서 디폴트 위기를 무릅쓰면서까지 큰 폭의 재정 긴축과 증세 반대를 고집했다. 민주당도 재정 긴축이라는 ‘시대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협상에서 공공사업이나 복지급여 확대 등 재정 적자와 관련된 제안들은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거의 터부시되었다.

그러나 미국보다 앞서 불황기의 재정 긴축을 강행한 영국·이스라엘 등은 경제실적이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심지어 대규모 시위나 폭동까지 일어나는 상황이다. 미국 역시 앞으로 정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대규모 실업, 소비지출 하락, 복지 혜택 축소, 사회 갈등의 심화 따위 문제가 불거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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