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장직 사퇴가 현실이 됐다.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됨에 따라 오 시장은 "투표가 실패하면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개표 직후 "바람직한 복지 정책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돼 참으로 안타깝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당당히 투표에 참여해 준 서울시민 유권자에게 사과드린다"며 짙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오 시장은 여러차례 버리는 카드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한 승부사였다.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2년 만에 서울시장 선거전에 뛰어들어 단숨에 시장직을 거머쥐었다. 그는 또다시 대선 불출마, 시장직 사퇴 연계 등을 연달아 내걸며 다시 한번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려 했지만 이번엔 처참한 좌절이었다.
그에게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시장직 연계는 확률은 높지 않지만 성공하면 대박이 터지는 도박에 가까웠다. 한나라당도 말렸고 성공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굽히지 않고 강행했다.
벼랑 끝 승부수가 좌절로 귀결되면서 그는 가파른 절벽으로 내몰리게 됐다. 상황을 오판한 탓이 커보인다. 정책을 타협하지 않고 극단적인 주민투표에 부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오 시장이 민주당의 강력한 투표 거부 운동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 전했다. 오 시장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얻은 자신의 득표율 25.3%에 일부 중도층의 투표 참여를 더하면 무난히 33.3%를 넘기리라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문제로 다가온 시장직 사퇴 이후 그의 정치적 미래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정치권 안팎에선 5년 전 한방에 서울시장을 차지한 승부사 기질을 되살려 재기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보수층에서 '복지 포퓰리즘에 맞선 전사'로 확실한 이미지를 굳힌 것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긴 호흡으로' 2017년 차차기 대선에서 보수층의 부름을 기다릴 것이란 관측이다. 서울시 부시장 출신인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은 "오 시장은 지속 가능한 바른 복지를 위한 연구나 이와 관련해 시민과 함께 운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오 시장의 부시장을 지낸 서장은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은 "세상이 그를 필요로 할 때 나서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는 비관적 전망도 많다. 오 시장의 강점이던 합리적 중도 보수의 이미지가 강경 보수 이미지로 바뀌면서 스스로 성장 가능성을 닫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주민투표를 주도하고 시장직 연계를 선언하기까지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당내 신뢰를 상당부분 상실한 것은 그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당내에선 그를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소리가 높다.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은 "한 달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정치판에서 차차기 대선을 기다리는 것은 난망한 일"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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