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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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위기인가, 티파티의 실수인가 [2011.08.17. 제874호]
김순배
[표지이야기] 정치 실패로 경제 위기 부추겨 오바마 재선 먹구름…신용강등 부른 티파티 강경노선에 대중 반감 커져 공화당이 역풍 맞을 수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추락시킨 것은 워싱턴 정치였다. 8월5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하며,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 증액 협상이 타결됐지만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S&P는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최근 증세에 합의하지 못한 점을 반영했다. 증세는 중기적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필수적 조처"라며 "최근 몇 달간의 정치적 벼랑 끝 전술은 미국의 행정과 정책 입안이 기존에 믿었던 것보다 갈수록 불안정하고 덜 효과적이며 덜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정치를 뭉뚱그려 비판했지만,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경제위기에 1941년 이후 70년 만에 국가신용등급까지 추락했느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오바마가 떠나야 할 시간"

당장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경고가 들어왔다는 보도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8월7일 "우울한 경제, 부채 위기 등이 오바마 대통령의 2012년 11월 재선 승부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최근 경제위기가 국민 여론을 악화시키면서 한때 민주당이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재선이 예상하기 힘든 소동으로 바뀔 조짐이다"라고 전했다. 칼린 보먼 미국 기업연구소(AEI) 여론전문가는 "대중의 비관적 분위기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8월8~10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지지도는 41%를 기록했다. 5월 말 같은 기관 여론조사 결과인 51%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신용등급 강등 전인 7월20~24일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등 핵심 선거 지역에서 이미 그의 지지율은 크게 악화됐다. 국민의 3분의 2가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도 나왔다. 이미 미국의 실업률은 9.15%에 이르고 있다. 오바마의 재선 전망도 신용등급과 같이 추락한 셈이다. 2008년 대선에서는 그가 변화를 내걸어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차기 대선에서는 약속한 변화를 지난 4년 동안 이뤘느냐를 놓고 평가받아야 한다.

오바마는 8월8일 민주당 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우리는 부채와 적자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상당수는 물려받은 것"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편 타당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말 흑자까지 기록한 연방재정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8년 58억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부시 대통령 시절에 씨를 뿌린 금융위기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으면서 국가채무는 천문학적 수준인 14조3천억달러로 치솟았다. 그런 면에서 오바마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은 항상 현직 대통령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는 구호도 먹혀 들어간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국가신용등급 추락을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할 최고 무기로 삼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 선두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하에서 미국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지표"라고 비난했다. 공화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미셸 바크먼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근본 골격을 하나씩 파괴하고 있다. 대통령이 올해 균형 예산을 편성하고 우리 경제를 살려놓는 것은 물론 국민을 일자리로 되돌려놓을 계획을 내놓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화당 대선주자인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는 "오바마가 떠나야 할 시간이다"라고 비난했다. 우파인 <폭스뉴스>는 8월7일 '오바마는 지미 카터 2.0'이라며 "그가 실패한 민주당 대통령 지미 카터로 변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힘없는 제국의 대통령

S&P가 지적했듯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원인이 된 것은 연방정부 부채 상한 증액 협상이다. 국가 채무상환불이행(디폴트) 시한을 불과 이틀 앞두고 7월31일 부채 한도를 최소 2조1천억달러 증액하는 대신 향후 10년간 2단계에 걸쳐 2조4천억달러의 지출을 삭감하는 방안에 타결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양쪽 모두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포기 및 재정지출 삭감을 비난하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재정지출 삭감이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오바마는 공화당과 협상 초반부터 지출 삭감과 증세의 균형을 촉구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해, 디폴트 사태는 막았지만 협상에서는 패배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오바마는 7월26일 <로이터통신> 여론조사에서 56%가 그의 요구대로 정부 지출 축소와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을 지지했는데도 공화당의 양보를 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이런 불만과 신용등급 강등은 부진한 경제 전망과 맞물려 오바마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지도력 불신과 관련해 <워싱턴포스트>의 8월11일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왜 중도좌파는 오바마에 지쳤는가'다. 오바마가 재정적자 감축 협상을 벌이면서 국가 디폴트 시한을 공화당이 인질로 잡고 몰아가도록 방치했다며, "오바마 지도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지적했다. 팀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유임시킨 데 대해서도 새 재무장관을 의회에서 통과시킬 자신이 없거나 남은 1년간 맡을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것을 걱정한 유약한 모습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면에서 '부시의 책사'로 불린 칼 로브 전 백악관 부실장의 지적은 들어볼 만하다. 그는 8월11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미국인들은 강력하고 결단력 있고 신뢰할 만할 지도자를 존경한다. 최근 몇 달간 오바마는 그런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바마가 15개월 안에 상황을 바꿔놓지 못하면 선거에서 져 백악관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의 신뢰 추락은 그의 8월8일 연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S&P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뒤 첫 연설에서 그는 "일부 기관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우리는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AAA 등급 국가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주식시장은 그가 연설하는 동안에도 계속 추락했다. <워싱턴포스트>는 8월9일 "시장은 분명히 오바마를 무시했다. 이것이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 나라와 자신의 대통령직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힘이 없고 결단력이 없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오바마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한 뒤 지나치게 정책 방향 등을 수정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조심스럽고 타협적인 접근 방식을 버리고 일자리와 경제성장 등을 만들어낼 과감한 프로그램을 내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민주당 내에서 커지고 있다. 그가 대중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좀더 교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가 이 와중에 8월18일부터 열흘간 여름휴가를 떠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때 칭송받던 오바마의 세계적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8월9일 '오바마는 세계를 어떻게 실망시켰나'라는 기사에서 그가 세계 곳곳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취임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고 실망시켰다며, 이번 신용등급 추락을 계기로 다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티파티 다운그레이드' 후폭풍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그 원인이 된 국가 부채 한도 협상 실패, 그리고 오바마의 지도력이 타격을 입은 배경에는 공화당 내 강경 티파티 그룹이 자리잡고 있다. 증세에 반대하고 정부 역할 축소를 요구하는 티파티로 상징되는 공화당 내 강경파는 채무 한도 증액 및 부유층 증세에 반대해 결국 파격적인 재정적자 감축안을 막았다. 협상 과정에서 존 베이너 하원 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는 티파티의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협상안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티파티 다운그레이드'라는 비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오바마의 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기본적으로 티파티 다운그레이드다"라며 "티파티가 우리를 디폴트 위기까지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의문의 여지 없이 티파티 다운그레이드다. 하원의 소수가 더 큰 합의를 할 준비가 돼 있던 상원 공화당 의원들의 뜻과 맞섰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거슬러가면 미국이 공화당에 끌려가게 된 것도 지난해 11월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하고 증세에 반대하는 티파티 의원들이 대거 당선된 이후다. 이런 탓에 민주당에서는 티파티를 향해 '테러리스트'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마이크 도일 의원은 비공개 민주당 하원 의원총회에서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했다"며 "얼마 안 되는 이들 테러리스트 그룹이 어떤 예산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오바마의 재선은 물 건너가고 티타피의 승리로 끝나는가? 각종 부정적 전망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판단은 아직 이르다. 내년 11월 대선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다. 아직 공화당 대선주자 가운데 누구도 오바마만 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일대일 선택의 대결이 벌어지면, 공화당은 오바마보다 더 나은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 오바마가 다른 민주당 후보의 도전을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로이터통신>이 8월10일 전했다. 지난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의 77%가 오바마의 직무수행을 지지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지지가 여전히 높다. 오바마의 언론 접촉 등 현직 프리미엄이 존재하고 그의 자금 동원력도 입증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위기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04년이 그랬다. 당시 많은 유권자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불만을 가졌지만 이라크전쟁과 경제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를 교체하길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략가인 캐런 피니는 "사람들이 겁을 먹으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험하기보다는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보낼 가능성이 더 크다"며 "오바마가 노력해왔고 나아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느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1980년 이후 재선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은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뿐이다. 내년 여름 이전에 미국 경제가 회생의 기미를 보인다면 재선 가도에 다시 파란불이 켜질 수 있다.

티파티 지지율도 떨어져

오바마를 궁지에 몰아넣은 게 티파티였듯, 오바마 재선의 열쇠도 티파티가 쥐고 있다. 공화당은 티파티 계열과 온건한 진영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최신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티타피 활동가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책이 경선에서는 먹혀들지 몰라도 그런 과정을 거친 최종 대선주자는 과격파에 놀아나는 것으로 보여 결국 온건 중도 유권자에게는 전혀 어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우파 극단 주변부에 맞서 중도 지지자를 차지한다면 경제가 나쁘더라도 재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8월5~7일 여론조사 결과 51%의 응답자가 티파티에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며 티파티 지지율도 37%에서 31%로 떨어졌다. 향후 2단계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회에 양당 의원이 동수로 참여하는 12명 특별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오바마와 티파티 사이의 갈등은 커질 것이다. <타임>은 "믿든지 말든지, 재정적자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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