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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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제국의 생로병사 [2011.08.17. 제874호]
조혜정
[표지이야기] 16세기 네덜란드, 19세기 영국 등을 통해 살펴본 패권의 역사… 축적 체제 위기 심각한 미 제국의 몰락은 시작됐다
"자본주의 체제의 실제 성과와 기대되는 성과를 보면, 자본주의가 경제적 실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다는 사고를 부정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성공 자체가 그것을 보호하는 사회제도들을 침식해, '불가피하게' 더 이상 그것이 생존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런 분석을 남겼다.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할 것 같지만, 실은 그 체제 내부의 모순 때문에 '끝'이 난다는 것이다.

성공한 이유로 실패하는 패권

자본주의 체제에서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슘페터의 이런 분석은 근거 있는 과학적 전망으로 다가온다. 근대 자본주의의 출발점을 어디로 보느냐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16세기 네덜란드,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미국은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다 쳐도, 적어도 네덜란드와 영국은 커다란 자본주의적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했지만 어느 순간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지오반니 아리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런 헤게모니 순환을 깊이 연구했다.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패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자본 축적을 둘러싼 세계적 규모의 사회·정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헤게모니 국가 내부에서 새로운 체계적 축적 체제 요소가 등장해 전 지구적으로 하락하던 자본의 수익성과 이윤율을 끌어올린다. 여기서 중요한 배경은 식민지 지배 체제, 냉전과 같은 국가 간 체제다. 새로운 축적 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간 체제가 형성돼야 비로소 헤게모니 국가로 등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강한 해군력에 힘입어 원거리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다. 16세기 유럽에서 곡물·해군 군수품의 수요는 높은 반면 공급은 부족했다. 아메리카에서 은이 유입되고, 대서양 연안국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때 네덜란드는 발트해를 통과하는 교역물의 강력한 통제권을 틀어쥐었다. 또한 동인도회사, 증권거래소 등을 통해 상업과 고도금융을 네덜란드로 집중시켰다. 대서양~인도양에 이르는 해상무역로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네덜란드 해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네덜란드 상인은 다른 나라 상인보다 손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영토주권과 세력 균형에 기반을 둔 근대 정치 체제인 베스트팔렌 체제는 네덜란드 헤게모니에서 등장한 새로운 국가 간 체제였다.

하지만 이런 축적 전략은 곧 네덜란드 세계무역 체계의 능력을 제약하게 된다. 영국·프랑스 등 후발 국가들이 네덜란드를 모방해 원거리 무역과 해군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또한 아직 민족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한 네덜란드와 달리 이 후발 국가들은 중상주의 정책을 바탕으로 '민족경제'를 형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베스트팔렌 체제는 안정적 세계질서 속에서 다른 나라들의 보호 비용을 절감시켜 이를 네덜란드를 따라잡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했다.


고도금융과 함께 등장한 미 제국

영국의 시기엔 영토제국주의, 곧 식민지 건설을 통해 생산 영역을 자본이 장악하기 시작한다. 자본이 원료와 노동력의 가격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식민지 인도는 영국에 인적·자연적·금전적 자원의 '화수분'이자, 영국의 위기를 전가하는 안전판으로 작동했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이를 밑바탕에서 지탱해준 건 네덜란드 시기부터 준비해온 금본위제, 중상주의, 해군력 강화와 국민국가 형성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은 과잉 축적과 금융 팽창에 맞닥뜨린다. 후발 국가들은 영국을 모방해 여전히 영토제국주의를 고수했다. 영국은 이윤율이 점점 떨어지는 생산에 투자하는 대신, 금융시장에 자본을 투자하는 금융화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을 비롯한 후발 국가에도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전쟁에 쏟아부어야 했고, 미국에서 사들인 수많은 자산도 미국에 되팔게 돼 두 나라의 지위가 역전된다. 이로써 영국은 채무국이 돼 헤게모니가 흔들리게 됐고, 거꾸로 채권국이 된 미국은 국외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칼 폴라니는 원래 상품이 아니었던 노동·화폐·토지가 영국 헤게모니 시기에 상품이 되면서(상품 허구) 자본주의 체제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상품 허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모순을 증폭해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을 불러오는데, 그 끝이 바로 파시즘과 사회주의, 뉴딜로 나타났다.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는 금본위제에 기반하는데, 화폐가 상품화되면 금본위제를 지탱하려고 중앙은행의 개입을 촉진하게 되고, 이 개입은 거꾸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작동을 가로막아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을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전화를 겪지 않은 건 미국뿐이었다. 미국은 군수품·생필품을 유럽 등에 팔아치워 큰돈을 벌었다. 미국은 수직적으로 통합된 법인 기업의 등장으로 거래 비용을 내부화했다. 전체 생산·유통 과정을 각기 다른 기업이 수행하면 각각의 단계에서 거래비용이 발생하지만, 자회사 등으로 수직적으로 통합된 법인 내부에서 이를 해결하면 거래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와 함께 미국은 고도금융을 통제했다. 1929년 대공황 때처럼 투기자본이 화폐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걸 막으려는 조처였다. 미국 달러만을 일정한 양의 금과 바꿀 수 있게 한 브레턴우즈 체제, 자유무역을 내세우면서도 국가 간 통제를 강조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는 모두 미국 우위의 고도금융 통제가 전제돼 있었다.

미국 헤게모니를 완성시킨 것은 한국전쟁이 도화선이 된 냉전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들은 생산능력을 잃었고, 미국이 생산하는 상품을 구입할 달러도 없었다. 이 국가들을 지원하는 데 망설이던 미국은 냉전을 계기로 국외 투자·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덩달아 미국은 20세기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제국의 모습은?

그렇다면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 경제가 안정적이고 달러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만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1960년대 말 미국 경제가 침체를 겪으면서 브레턴우즈 체제는 무너지고 변동환율제로 전환된다. 환율이 불안정해지자 투기자본이 다시 나타났고, 미국은 금융화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19세기 말의 고도금융과 달리, 산업지배적인 금융그룹의 등장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세계의 자본이 미국으로 집중된다. 이렇게 자본이 집중된 미국이 경제난에 빠지면? 답은 뻔하다.

아리기는 금융화가 축적 체제를 교란하고, 국내외 갈등이 증폭돼 체제의 카오스를 겪는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이 체제의 카오스 속에서 새로운 축적 체제와 국가 간 체제가 형성된다. 지금 세계는 체제의 카오스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세계체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참고 문헌
<자본주의 역사강의>(백승욱 지음·그린비 펴냄), <장기 20세기>(지오반니 아리기 지음·그린비 펴냄),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지음·도서출판 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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