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화 지수 측정해 보기' ①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다 ②외국 여행을 간 적이 있다 ③국제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다 ④외국 상표를 다섯 가지 이상 알고 있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세계화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개인의 세계화 지수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10가지 문항들 가운데 일부다. 그러나 이 문항들의 내용은 학생 스스로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하며, 되레 사회·경제적 생활 격차를 느끼게 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1년도 초·중·고 교과서에 인권가치에 부합하지 않거나 차별적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 많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수정·보완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는 인권위가 지난 5월 교사와 학생으로 구성된 '교과서 모니터링단'을 꾸려 3개월 동안 교육기본법과 국제인권규약을 기준으로 초·중·고 48종의 교과서를 점검한 결과다.
이 결과를 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드러낸 내용이 많다. 한 고교 도덕 교과서에는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격려의 편지를 적어보자"는 내용이 '점자를 읽는 시각 장애인의 손'과 '계단을 올라가지 못하는 휠체어 탄 장애인' 사진과 함께 실렸다. '소수자·사회적 약자와 인간의 기본권 문제'를 고민해보자는 취지지만, 정작 내용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거나 '격려편지'를 써야 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대책을 제시했다. 같은 교과서의 '배려적 사고' 단원에는 △끈으로 눈 가리고 친구 찾아가기 △양팔을 하나로 묶고 수업하기 △코를 막고 점심먹기 등 장애 체험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학습대상이 고등학생임에도 단순한 '재미'나 '장난'에 그칠 우려가 있는 활동을 제안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됐다.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남성 중심적·우월적 사고를 드러내는 사례도 많았다. 초등학교 실과 교과서에 나오는 삽화는 여전히 집안일이나 육아 등을 여성의 몫으로 그리고 있다. 또 초등학교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에 소개된 위인의 업적이나 일화도 '자긍심-스티븐 호킹, 꿈-히딩크, 책임-한주호 준위' 등 남성들의 사례만 언급돼 있다.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에는 에이즈 예방 기본 수칙으로 '절제'와 '정조'를 언급하며 '믿을 수 있는 한 사람과의 성관계가 안전하다'고 서술돼 있다. 에이즈는 수혈 등 다른 경로로 감염될 수 있음에도 '에이즈 감염자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편견을 갖게 만드는 내용이다.
또 '10대 임신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10대 임신은 정신지체·농아 등 선천적 비정상·장애아가 태어나기 쉽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는 경제적·사회적·법적 차별에 직면하게 된다'고 기술한 부분도 교육 취지와 달리 장애에 대한 편견과 비혼모·비혼부의 학교 내외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어 문제로 지적됐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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