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나라가 망해도 오늘 그들은 싸운다 | ||||||
S&P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는데 미국 정치권은 ‘네 탓’ 공방만 벌인다. 민주·공화 양당 정치인들은 신용등급 강등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악용’한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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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부채 감축 논의를 보면 정치적 정책 결정 과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연해졌고, 이건 최우량(AAA) 등급에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 신용등급을 70년 만에 최우량에서 한 계단 내려 큰 충격을 던진 신용평가 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핵심 간부 데이비드 비어스가 지난 8월8일 한 말이다. 미국 정부가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은 인정하지만 부채 협상과 관련한 정치권의 날선 대립 및 행정부의 해결 능력 부재가 등급 강등을 결정한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S&P의 국가부채위원회 존 체임버스 위원장도 “이 문제는 정치권 전체가 풀어야 할 과제다”라고 말해 이번 결정이 미국의 채무 변제 능력보다는 정치 난맥상에 기인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실제로 S&P의 강등 조처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 수요는 줄기는커녕 연일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으면 당연히 미국 국채를 기피해야 정상이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국 국채를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하며 선호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 요인에 따른 S&P의 신용등급 강등 직후 지금 미국 정치권은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헐뜯으며 볼썽사나운 이전투구를 하고 있다. 싸움의 양상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정치 요인에 의해 등급을 강등한 S&P에 대한 정치권의 맹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벌이는 치열한 책임 공방이다. 특히 내년 11월 대선과 중간선거를 앞둔 양측의 비난전은 S&P 결정을 계기로 열기를 더하고 있다.
S&P와 정치권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신경전은 점입가경이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정부에 치욕적인 신용등급 강등을 안기는 초강수를 둔 S&P는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정치권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S&P의 강등 조처가 향후 10년에 걸쳐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를 2조 달러나 부풀린 잘못된 예측에 근거한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신용평가사 규제 방안 마련 ‘속도전’ 하지만 S&P는 이 같은 오류를 시인하면서도 신용등급 강등 결정을 바꾸진 않았다. 오히려 S&P는 공식 발표문에서 “미국의 정책 결정과 정치기관의 효율성과 안정성 및 예측성이 약화됐다”라는 점을 강등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즉 지난 몇 달 동안 연방 부채 감축 문제를 놓고 정치권의 팽팽한 대립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행정부의 해결 능력 한계가 강등 조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 관료를 지낸 로버트 리탄 코프먼재단 부회장은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등급 강등이 나온 시점을 감안할 때 이건 분명히 정치적인 결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S&P의 강등 결정에 대해 정치권이 이처럼 강경하게 대응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S&P를 다른 신용평가사들과 더불어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범’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디스·피치는 물론 S&P가 신용평가를 잘못해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과연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할 자격이 있느냐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정치권은 무엇보다 S&P의 신용등급 강등 결정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청문회를 통해서라도 강등 결정 배경과 과정을 철저히 따질 태세이다. 데니스 쿠치니치 민주당 의원은 이번 결정으로 S&P의 모기업인 맥그로힐 사가 재정 이득을 봤는지를 가리기 위해 관련 문건 제출을 요청한 상태다. 지난해 공화당 의원과 공동으로 신용평가사의 역할을 대폭 제한한 금융개혁 법안을 발의한 버니 프랭크 민주당 의원은 “비우량 주택담보 상품에 최우량 등급을 남발했다가 금융위기를 촉발한 사람들이 이번에도 형편없는 일을 벌였다”라고 비난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에 비하면 S&P에 덜 비판적이지만, 신용평가사의 등급 결정 과정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민주당과 의견을 같이한다. 정치권의 질타가 커지면서 지난해 금융개혁 법안이 발의된 뒤 그간 신용평가사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온 증권감독위원회(SEC)도 규제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특히 S&P를 비롯해 무디스와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가 바짝 긴장하는 대목은 증권감독위원회가 별도의 독립 기관을 신설해서 이 기관이 평가사를 선정해 평가를 의뢰하도록 하자는 민주당 알 프랑켄 상원의원의 제안이다. 그 경우 3대 신용평가사에 대한 의존도는 뚝 떨어질 것이다. S&P의 강등 결정에 대해 정치권이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그런 결정이 나오도록 한 곳이 바로 정치권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공화당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풀뿌리 조직인 티파티(Tea Party)로부터 지원을 받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공화당 의원들이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공화당 전체 하원 의원 240명 가운데 티파티의 지원을 업고 당선된 의원은 대략 60명인데, 그 가운데 20명이 ‘골수분자’로 꼽힌다. 티파티의 핵심 구호인 ‘재정 규모 축소와 증세 반대’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이들은 미국이 국가 부도의 위기로 치닫던 7월 하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백악관 측과 막판 타협 끝에 마련한 부채 협상안에 제동을 걸어 충격을 주었다. “티파티 파괴 못하면 위기 계속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지난 8월7일자 <뉴욕 타임스> 고정 칼럼에서 “우리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일방적인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문제는 자기들 요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반복된 위기를 조성하려는 극우파가 등장하면서 생긴 것이다”라며 티파티를 정조준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직면한 진짜 문제는 연방 적자에서 1조 달러를 줄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책임성 있는 정책을 가로막고 있는 극우파를 파괴해 소외시킬 수 있느냐이다”라고 지적했다. 공화·민주 양당의 비난전도 가관이다. 양당은 S&P의 강등 결정을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쟁 도구로 삼고 있다. 민주당 중진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NBC 방송에 나와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티파티’에 대한 강등이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티파티의 영향권에 든 공화당 의원들이 끝까지 타협을 거부하는 바람에 부채 협상이 막판까지 난항을 겪었고, 이런 비타협의 모습이 S&P의 강등 조처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신용등급 강등으로 재선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국익을 이기주의와 당·이념보다 더 앞세우길 거부한 결과다”라며 공화당의 비타협적 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공화당도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선봉장 격인 에릭 캔터 하원 원내총무는 “오바마 행정부의 반기업적이고 초고압적인 규제정책, 그리고 증세 방침이 경제에 위험스러운 불확실성을 불어넣었다”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공화당 대선 예비주자로 티파티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미셸 바크먼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을 현실감각도 없는 사람으로 폄하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S&P의 결정이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주말에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숨어 있었다. 그러고는 나와서 한다는 말이 세금을 올리는 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최상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이건 틀린 말이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또 공화당의 대선 유력 주자인 미트 롬니는 “이번 신용 강등은 미국의 국가 하락을 보여준 침통스러운 지표이다. 이런 일이 오바마 대통령 통치 때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화·민주 양당의 비난전이 가열되면서 S&P가 신용등급 강등의 주원인으로 꼽은 정치적 난맥상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면한 최대 과제인 추가 부채 감축 협상도 난망한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든다. 추가 부채 감축 협상은 공화·민주 양당에서 각각 6명씩 참여하는 12인 특별위원회가 주도하는데, 향후 10년에 걸쳐 1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 감축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공화·민주 양당은 지난 8월10일 특위에 참여할 의원들을 선정했는데, 예상한 대로 부채 감축 협상과 관련해 기존 원칙을 고수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부분이어서 타협안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를테면 공화당 몫으로 추천받은 존 카일 상원의원은 백악관과 민주당이 주장하는 증세에 철저히 반기를 들어온 사람이다. 또 민주당 몫으로 추천받은 패티 머레이 상원의원은 원칙주의자로 공화당이 요구하는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 혜택의 대폭 수술에 반대할 게 확실하다. 미국 신용등급 추가 강등 가능성 특위는 이달부터 가동에 들어가 오는 11월23일까지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감축안을 내놓아야 한다. 만일 특위가 감축안을 내놓지 못하거나 내놓더라도 이를 의회가 통과시키지 않으면 내년부터 10년간 1조2000억 달러가 연방 예산에서 자동으로 무조건 삭감된다. 그럴 경우 절반은 국방 예산에서, 나머지 절반은 비국방 부문에서 줄여야 하기 때문에 현재 연방정부 내 각 부처는 사상 최대가 될 삭감 규모와 내역을 놓고 벌써부터 끙끙 앓는다. 다만 현 시점에서 한 가닥 희망이라면 백악관은 물론 공화·민주 지도부가 S&P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신용등급이 추가 강등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타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의원들이 지도부의 뜻에 고분고분 따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공화·민주 양당은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일까지 불사하는 인물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상자 기사 공화당 원칙주의, 미국 경제 발목 잡다 참조). 결국 공화·민주 양당이 지금처럼 팽팽한 대결 구도 속에 추가 감축 협상에 실패할 경우 연내에 신용등급 추가 강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
2011-08-27
내일 나라가 망해도 오늘 그들은 싸운다- 권웅// 시사인 205호, 2011-08-23 10: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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