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1

[세상 읽기] 기로에 선 진보정당의 미래 / 안병진

최근 진보정당 간의 통합을 둘러싼 혼란스럽고 격렬한 갈등을 보는 심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겨우 봉합돼 가는 그간의 해묵은 쟁점만큼 심각하고 새로운 쟁점이 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진보주의 합의에 무게를 두고 당내 공존을 시도하는 것이 갈등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유시민 대표가 진보를 선언하더라도 사실은 자유주의 실천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의 깊은 뿌리는 진보주의의 기준이 말과 문서냐 아니면 실천적 검증이냐가 아니다. 더 파고들면 '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유시민 대표와 공존하고자 하는 이들 중에는 진보정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비전과 실천이 진보적 자유주의와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연립정부로 가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존을 거부하는 이들 중에는 설령 진보적 자유주의라 하더라도 당 안에 공존하면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진보의 실천에 방해가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오래전 서구 진보진영 안에서도 유사한 대논쟁이 있었다. 당시 샹탈 무프 교수 등의 문제제기는 진보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으로서의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의 긍정적 토대 위에서 부단히 진보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역동적 정치라는 점에 있었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했지만 실적이 보잘것없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제대로 확장된 버전으로 실행하는 것이 진보이다. 결국 무프에게 진보란 슬라보이 지제크와 같은 학자들과 달리 자유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축 위의 더 민주적인 이념이란 것이다. 그래서 무프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혹은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부르고 자유주의를 발전시킨 '협동조합 사회주의'에 호감을 표시했다. 스웨덴처럼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들도, 흔히 진보주의자들이 간과하지만, 매우 자유주의적인 제도와 문화 위에서 작동한다. 반면에 5공 시절 '민주정의당'에서 오늘날 '공생'에 이르기까지 건드리는 단어마다 오염시키는 한국의 수구나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체제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부재한 속 빈 강정이다.

사실 자유주의의 다원성, 견제와 균형 등의 가치는 진보가 더 민주적으로 발전시켜 민주공화국의 원리로 작동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 내 지배적 지위 방지 조처, 금융거래세,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등은 실행하기 쉽지 않지만 모두 자유주의적 범위들에 불과하다. 극도로 힘의 역관계가 불리한 한국에서 집권할 진보정당이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자유주의 틀을 넘어 금융시스템의 국유화를 추진할 수 있을까?

결국 진보정당의 미래에는 세 가지 길이 놓여 있다. 룰라와 웰스톤과 네이더의 길. 브라질의 진보 대통령이었던 룰라의 길은 진보주의가 자유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하는 통합 진보정당이나 연립정부를 통해 더 급진적으로 변모시켜 나가는 길이다. 이 길은 최종 종착점을 정하지 않고 부단히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방식이다. 웰스톤 진보 상원의원의 길은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당 구조와 선거제도의 혁신 없이 민주당의 중도적 구심력 속에서 분투했지만 결국 미미한 역할에 그친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때 미국 진보의 상징이었던 네이더 녹색당 대표의 길은 중도적인 민주당 외곽에서 압력을 행사하지만 수권은 포기한 등대정당의 역할이다. 과연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이 세 가지 길 중 어디를 선택할까? 진보정당과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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