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자주국방 서비스를 실시하는 안", "소득 구분 없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경기도 이남(2011년), 강원도 이남(2012년)에서 전면적으로 자주국방 서비스를 실시하는 안".
이 두가지 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 비유가 말도 안 되는 견강부회라면, 자주국방 대신에 '치안'이나 '현역군인 무상배식'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요즘 훌륭한 사설 경비업체나 경호업체가 많으니 소득 하위 50%만 국가가 치안을 제공해야 한다거나, 또 훌륭한 배달도시락업체가 많으니 소득 하위 50%의 입영자만 배식을 해야 하나를 물을 수도 있다.
오늘 치러지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굳이 자주국방에 비유하는 것은 이 두가지가 한국의 보수우파들에게는 착종을 일으키는 비슷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정확히 표현하면 의무교육의 일환인 급식과 자주국방은 일종의 '정언적 명법'이다. 행위의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것도 정언적 명법이나, 물살이 거세거나 주변에 수영 잘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이를 구할 수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명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구조 가능성 50% 이상일 때만 구한다'거나 '수영능력 하위 50%만 구한다'로 바꾸지는 않는다.
자주국방과 무상급식도 마찬가지이다. 자주국방은 우리의 국가적 목표이나, 지금도 여전히 미군이 주둔하는 등 거리가 있다. 돈이 없어서였고, 미군 주둔 자체가 동북아의 세력균형 측면에서 필요한 면이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다 보니, 작전권 반환 등을 놓고 보인 일부 보수우파들의 모습은 자주국방이라는 정언적 명법 자체를 부정하는 듯했다. 작전권 반환이나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면 국방을 포기한다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한국의 자주국방은 '작전권을 미군이 쥔 굳건한 한-미 동맹'이라는 등식으로까지 치환했다.
독립국가에서 외국군 주둔은 정상이 아니다. 자주국방이란 적어도 외국군이 상시적으로 주둔하지 않는 원칙에 서야 한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의무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자는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국방의무를 하는 군인에게 배식을 하는 것과 같다. 의무교육도 국방의무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의무이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안 보내면 부모가 형사처벌 받는다. 그런데 밥 안 주고 의무를 수행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재정 형편 때문에 무상급식을 못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상급식이 복지포퓰리즘이고 거지근성을 키우는 망국병이라고 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번 주민투표는 '소득 하위 50%'를 못박지 말고 단계적 무상급식을 물어야 했다. 이번 주민투표의 관심은 결과가 아니라 투표율이 됐다. 물에 빠진 아이의 구조나 자주국방 등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물었기 때문이다. 야당에는 꽃놀이패 투표가 됐으나, 우리 사회가 이상과 가치로서 새겨야 할 주제를 갈등의 소재로 만들었다.
스위스는 2009년 이슬람 사원의 첨탑 건설을 놓고 국민투표를 치러 금지했다. 종교와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에서 기본적인 정언적 명법으로 찬반의 대상이 아니다. 민도가 높다는 스위스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스위스가 종교의 자유와 소수에 대한 관용을 부정한 것이다. 그런 스위스를 보며, 오늘 '오세훈 투표'에 위안이나 삼아야 하나?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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