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9

[사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안정이 최우선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중병설이 나돌았지만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던 그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충격적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주변 정세 전반에도 심대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발표와 동시에 후계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승계를 강조함으로써 체제 안정에 대한 의구심에 쐐기를 박았다. 북한이 이후 사태 전개를 제대로 통제하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순 없지만 권력 공백에 따른 급변사태가 바로 뒤따를 정도로 체제가 허약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수록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의 사망과 그것이 불러일으킬 한반도 및 주변 정세 변동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에 비견될 만하다. 당시 북한은 현실 사회주의체제 붕괴 뒤 극도의 어려움에 봉착했고, 핵위기로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후 17년간 북을 통치해온 김 위원장은 경제위기와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 체제를 재건하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건설도 받아들였다.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체제 존립을 위협한 미국 조지 부시 정권에 맞서 핵무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해서 그가 약속한 강성대국은 인민을 먹여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가 됐다.

정세변동의 정략적 이용 경계해야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상황은 어떤 면에선 김 주석 사망 때보다 더 열악하다. 지난해 공식화한 김정은 후계체제는 긴 세월 동안 권력승계 수업을 받은 김 위원장 때와는 달리 아직 굳어지지 못했고, 경제상황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대량 탈북 사태에서 보듯 체제 이완의 징후마저 뚜렷해졌다. 남북관계는 더 경색돼 있고, 주변 정세도 17년 전 못지않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북 체제의 불안정성은 그만큼 더 커졌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남북관계가 17년 전보다 더 경색돼 있다는 건 치명적이다. 현 정권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의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엔 거의 전면적인 단절 속에서 긴장만 높아졌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까지 남쪽이 어떠한 이상징후도 포착하지 못한 현실이 이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이 북의 정세 변동과 관련해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이것이야말로 이런 긴박한 시기에 최대 위험요소일 수 있다. 북을 압박해서 굴복시키거나 체제 붕괴를 통한 흡수통합까지 염두에 둔 남쪽 강경론자들이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며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그들과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극도로 제한돼 있는 이상, 상황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기 십상이다. 이 또한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까지 앞둔 우리의 유동적인 정치상황도 불안 재료다. 정권 차원에서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욕심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랬다가는 자신들뿐 아니라 민족 전체에 치명적 손실을 가하는 심각한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 게다가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속에 동아시아 정세가 근본적인 구조변동을 겪고 있고, 특히 내년은 이들 주요국의 정치 상황이 동시에 바뀔 수도 있는 권력교체기다. 이런 이행기에 안팎의 정치세력이 김 위원장 사망이 촉발할 정세 변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장난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남북 대화 복원해 위기를 기회로

정부는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해 민족 전체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냉정하게 대처하면서 정세 변동의 주도권을 확보해가야 한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대북 전략을 재검토하면서 북과의 대화 통로를 가능한 한 넓혀야 한다.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를 공고히 해놓지 않으면, 급작스런 정세 유동화는 외세의 개입을 부르기 십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남쪽이 주도적으로 북과의 대화 통로를 복원하고 필요하면 전략적 지원을 통해 북 체제의 안정적 이행에 기여해야 한다. 당면 정책목표의 우선순위를 여기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남북관계를 회복시키고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북의 동향을 정밀 주시하되 군경의 과잉 전개 등은 자제하고 북을 자극할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야 한다. 조의 표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17년 전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조문 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 오히려 이를 해빙의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폐기처분한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위기를 과장하며 북을 더 흔들어 붕괴·흡수통합의 기회로 삼으려는 보수우파 일각의 위험한 모험주의를 용납해선 안 된다. 자칫 북의 위기를 한반도의 전면적 위기로 증폭시킬지도 모를 그들의 단견은 단연 배제해야 한다.

[속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9일 낮 12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향년 70살. 조선중앙방송은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서거하셨다"고 전했다. 병명은 심근경색과 심장쇼크다. 현지지도에 나선 것을 보면 당시 건강이 나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급하게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1941년 2월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서 출생했으며, 1993년 국방위원장 자리에 올라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의 뒤를 이어 북한을 통치해 왔다. 2008년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상설이 계속됐으나 올해 8월 러시아와 중국을 방문하며 건재를 과시한 만큼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한반도 정세를 안갯속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의 뒤는 세번째 아들 김정은이 잇게 된다. 지난해 후계자로 급부상한 그는 이날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일 사망 발표문에서 "친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통치를 받들어"라고 표현함으로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확정됐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멸공봉사’하는 오세훈 시장

오세훈 시장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동네 판자촌에 살면서 아버지가 몇달씩 월급을 받지 못해 굶고, 집 주인과 싸워서 셋집에서 쫓겨나는 등 가난에 시달리며 자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지금은 58억원대의 재산가가 되었다. 어렵게 자란 그는 절약이 몸에 배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절약을 하지 않고는 58억원의 재산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서울시장이 되어 대권(大權)의 꿈을 품고 전시행정에 몰두하고 있다. 제 돈이 아니라고 혈세를 마구 써대는 것이다.

다음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저질은 낭비사례를 보도한 일간지 기사제목들 가운데 일부이다.

"광화문광장 짓는 데 465억, 연 관리비 28억," "세금 1조5,000억 먹고 달리는 서울버스," "서울시 150억원 세금으로 유람선 띄운다." "서해뱃길 재정난… 서울시 1,780억원 국비 요청," "여의도 항만 비밀 추진, 2,250억 소요," "하루 고작 30명 찾는 73억짜리 마곡 홍보관," "서울시 230억대 홍보비…" "서울시 기금 7,000억 일반회계 불법전입," "177억원 들인 반포분수 잠수교 보행자에게 물벼락." "서울시 둥둥섬에 1백억 특혜" "2,250만원어치 나무 심으려 2,500만원짜리 계단 만들다." "다리만 아픈 한강다리 카페 누가 오겠어요?"

2010년 8월 2일자 연합뉴스는 시울시의 재정상태를 아래와 같이 보도한 바 있다.

"서울시가 도시기반시설과 지역개발사업 등 대규모 투자사업에 대한 융자를 목적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재정투융자기금은 2008년 말 5,045억원에서 2010년 6월말 현재 122억원으로 줄었다. 또한 서울시의 시금고 운영 이자수입이 2008년 1,550억원에서 2009년 179억원으로 급감하고, 2009년 일시차입금에 대한 이자지출은 59억8,700만원에 달했다. 2010년에도 6월 말까지 이자수입은 45억원에 그치고 3∼6월 2조2,200억원을 은행에서 빌려 쓰면서 29억원의 이자를 지출했다."

"서울시가 기금을 일반회계에 전입하는 과정에서 SH(Seoul Housing)공사(택지개발 및 주택건설을 담당하는 서울시 산하의 공기업)에 상환기일이 도래하지 않은 기금 융자액 3천억원을 갚도록 하면서 SH공사의 자금사정도 악화되었다. SH공사는 서울시 기금을 포함한 빚과 이자를 갚기 위해 2010년 상반기에만 1조4,900억원의 기업어음을 발행했다. SH공사는 2009년 말 부채가 16조3,455억원이었고, 2010년 6월까지 이자로만 매일 15억3,500만원씩 총 2,763억원을 지급했다. SH공사의 차입액은 2009년 61%가 늘어 4조6,204억원이 되었다. SH공사가 빚을 갚기 위해 빌려오는 돈만 3조4,195억원이다."

2007년 6월 경제대국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夕張)시가 파산을 선언했다. 파산의 원인은 첫째, 시장의 행정능력 부족이다. 사업의 타당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둘째, 시의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 시장과 당적이 같은 80% 이상을 점한 자민당 의원들은 거수기 노릇을 하고 야당의원들은 시장의 악정(惡政)을 견제할 수 없었다. 6·2 지방선거 이전의 서울시와 같았다. 원래 탄광도시였던 유바리시는 석탄이 석유로 대체되면서 도시의 미래를 관광산업에 걸고 방만한 투자를 했던 것이다. 시의원들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파산은 없었을 것이다.

'탄도(炭都) 유바리를 관광(觀光) 유바리로!'란 슬로건을 내걸고 빚을 얻어 민간호텔 인수, 석탄박물관과 대규모 스키장 건설, 국제영화제 등 놀거리·볼거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투자했던 관광시설은 강한 브랜드를 형성하지 못했다. 경쟁에 밀리고 관광객이 오지 않자 새로운 투자를 했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관광시설은 돈 먹는 불가사리로 둔갑했다.

재정파산의 대가는 혹독했다. 자동차세가 2배로 올랐고 버스요금도 50% 올랐다. 초등학교 7개, 중학교 4개를 각각 1개로 통폐합하고 공공시설은 최소화했다. 주민세·재산세의 인상, 공공시설 사용료 50% 인상, 수도료 70% 인상, 무료였던 쓰레기 처리도 유료화했다. 270명이던 시직원은 80여명으로 줄었다. 60년대 11만6천명이었던 인구가 1만8백명으로 줄었다. 86만2천엔(1,200만원)이던 시장의 월급은 25만9천엔(330만원)으로 낮추고 관리직은 50%, 일반직은 30%씩 봉급을 삭감했다. 2010년 현재 유바리는 연간 세수입 9억엔에 빚은 322억엔이다.

지방 소도시 유바리의 파산을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다. 2010년 일본 총무성은 전국 1,700여개 지자체 가운데 사실상 파산인 곳은 유바리시 외 2곳, 파산 직전은 40곳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2곳은 2002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나가노(長野)와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이다. 거대도시 오사카는 현재 '오사카 유신계획(維新計劃)'을 수립하고 공무원의 급여를 12% 삭감하는 등 자구(自救)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서울시도 유바리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드물 것이다. 한강르네상스란 이름으로 서울을 동북아 중심 항구․관광도시로 만들겠다며 온갖 놀거리·볼거리에 혈세를 쏟아붓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바라시 시장의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 서울시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일당체제가 와해되어 오시장의 난정(亂政)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다산(茶山)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관리가 갖춰야 할 으뜸가는 덕목으로 청렴과 절약을 들고 있다. "목민관 노릇을 잘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청렴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절약(節約)해야 한다. 개인적인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인 재물을 절약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공적인 재물을 사적인 재물보다 절약해야만 현명한 목민관이다. 절약해서 쓰는 것이 목민관의 으뜸가는 임무이다."

오세훈 시장이 대통령을 한번 해보겠다는 욕망을 품고 요란한 전시행정을 편다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공적인 재물을 마구 써대고 있는 것이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닌 선사후공(先私後公)이요,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아닌 멸공봉사(滅公奉私)하는 몹쓸 공직자이다. 이런 사람이 공직을 맡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한다. 오시장은 공직을 맡아서는 안될 사람이다.



글 임석민 운송물류를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한반도 대운하, 경인운하, 한강주운시업, 4대강 사업 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현 한신대학교 경상대학 교수, 저서: , , , , , (共著)

▶한겨레 오피니언넷 '훅(hook)' 바로가기◀




[세상 읽기] 정치가 내용 없이 격렬하기만 할 때 / 박상훈

민주정치가 사회를 안정적으로 통합해내는 비결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갈등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데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이를 해당 기업의 노사문제로 제한함으로써 갈등의 범위를 축소할 수도 있다. 혹은 노동시장 정책을 바꾸는 문제로 접근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어떤 경제체제를 만들 것이냐 하는 더 큰 차원에서 대안을 생각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갈등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대개의 경우 갈등 강도를 높이는 반면, 갈등 범위를 확대해 접근하는 것이 사회 안정과 통합에 효과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처럼 노동문제를 기업 내 노사관계로 제한하고자 하는 나라도 없지만 갈등 강도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이를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중심 문제로 다루는 나라들의 경우 훨씬 더 평화롭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그 실례라 할 수 있다.

정당체제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당들이 대표하는 이념적·계층적 기반이 매우 좁고 모호하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을 보수정당이라고 할 때, 그들이 갖는 보수이념이 뭔지 혹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구성도 그렇다. 사회 상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지표의 다수는 여전히 서민층이다. 민주당의 이념적 빈곤도 못지않다. 특정 사회 계층으로부터 민주당이 차별적인 지지기반을 구축한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 문제가 시작된 것은 지금의 민주당이 집권당일 때였으며, 최근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그때 추진되었다. 분명 두 정당 사이에 차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과연 '종류가 다른 정당' 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지 회의적이다. 그런데 이들 간의 갈등의 강도는 거의 전쟁 수준일 때가 많다. 혹자는 그 때문에 대표되는 사회 갈등의 범위가 확대된 효과가 있지 않았냐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외양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여야 모두 경쟁적으로 복지를 말하고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 개선에 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기존 정당들의 사회적 기반은 넓어졌을까? 그렇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신뢰는 계속 낮아진 반면, 기존 정당을 넘어선 제3세력의 등장을 갈구하는 사회심리는 커졌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기존 정치가 내용 없이 격렬하기만 한 적나의 권력투쟁으로 일관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 정부에서 권력을 상실한 집단들의 정서는 맹목적인 '반디제이', '반노무현'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른바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주류 언론의 보도행태가 이를 실증했다. 지금은 다를까? 글쎄,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지금의 야권이나 비판언론의 정체성은 상당 정도 '반엠비'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엠비'가 정권교체를 위해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한국 정치의 악순환 구조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강요하는 양극화된 의견 구조는 소리 없는 다수의 의견을 억압하는 부작용도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양극화된 악순환 구조에 불만을 갖는 시민들이 기존 정당과 언론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 구원자를 찾아 나서거나, 아니면 아예 공적 세계로부터 이탈해 자신들만의 세계로 도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대안 세력이라면 누구를 위해 어떤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고자 하는지부터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내용 없이 공허한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정치를 너무 오래 지속하고 있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 "디도스 수사발표문, 조현오 청장실서 막판에 고쳐"
■ [한겨레21 단독]"청와대 지시로 디도스 금전거래 덮었다"
■ 노무현 수사 이인규 "저승 가 노통에게 빚 갚으라 따질 것"
■ 네덜란드 가톨릭교회서 수만명 '도가니' 충격
■ '일본군 위안부' 아픈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서 뺀 한국

[고종석 칼럼] 앞으로 한 해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꼭 한 해 앞으로 다가왔다. 그사이 이명박 대통령이 큰 흉사를 겪지 않는 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2012년 12월19일 이 나라의 제18대 대통령을 뽑는다. 지난 네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를 내다보기 알맞은 아침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이득을 얻는 이가 있으면 밑지는 이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훔쳐온다면, 지난 네 해는 99% 한국인들에겐 나쁜 시절이었고, 나머지 1% 한국인들에겐 호시절이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기도 전에 '기업 프렌들리'라는 걸 내세웠으나, 그가 우애를 건넨 1% 대한민국에 중소기업이 끼일 자리는 없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시장친화적 정권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권은 극소수 대자본이나 우호적 연성권력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서슴없이 시장의 규칙을 깨고 개입했다. 이런 편의주의는 이달 초 출범한 종합편성채널의 허가 과정에서도 확연했다. 그러나 크게 보아 대한민국은 이 정권에 이르러 말 그대로 '주식회사'가 되었다. 지난 네 해 동안 극소수의 대주주는 만세동락을 누리는 듯 보였고, 대부분의 소액 주주는 절망에 허덕였다. 대주주들도 뭔가를 고르게 누리진 못했다. 정권 초기에 등장한 '고소영', '강부자' 또는 '영포라인'이라는 말에 설령 과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정권의 인사정책은 그야말로 사사로운 인연에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 개인에게 붙은 '독재자'라는 딱지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독재자라는 말은 단임 대통령 이명박에게는 과하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가 만신창이가 된 사실이 상징하듯, 이 나라의 인권 상황은 이전 정권들 때에 견주어 크게 악화했다. 청와대가 선거 부정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것은 명백한 퇴행이지만, 되돌릴 수 없는 퇴행은 아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에 끌려가면서도 고문을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을 아직 잃지 않았고, 백주의 저잣거리나 일터에서 구속될 걱정 없이 대통령 개인을 욕할 수도 있다.

이 정권이 크게 저항하지 않았고 저항할 필요도 없었던 경로의존성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의 주류화는 이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회전문 인사'는 이전 정권에도 있었다. 이 정권이 무능과 뻔뻔함에 이끌려 워낙 죽을 쑨데다 직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겹쳐져, '구관이 명관'이라는 감정이 유권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물론이고 노무현 정부도 이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정권은 아니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불평등 조항들은 노무현 정권이 그 협정을 체결했을 때부터 이미 독니를 드러내고 있었음을. 그리고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정권의 노동 인권 경시 역시 이전 정권의 노동정책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임을.

물론 그런 사실들이 이명박 정권의 도드라진 실정을 감출 수는 없다. 한국 처지에선 한층 악화된 조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그리고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소위 4대강 사업은 이 정권에 새겨진 주홍글씨의 상징을 넘어서 다음 정권, 그다음 정권에까지 커다란 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짐을 질 각오를 하면서도 권력을 잡으려는 정파들의 안간힘으로 여의도 정가는 부산하다. 한나라당은 연이은 악재로 나둥그러지기를 되풀이하다 박근혜 의원이 직접 나서서 키를 잡았고, 범야권은 이념과 정책을 밀쳐놓은 채 선거를 겨눈 합종연횡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네 해 동안 한국 정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던 '박근혜 대세론'이 잦아들면서, 차기 대권을 향한 정파들의 움직임은 지금보다 훨씬 현란해질 것이다.

직업정치인이 아닌 이상 사람이 정치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밥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고, 생명체의 본능에 따라 연애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우리 일상도 깊이 들여다보면 흔히 넓은 의미의 정치가 규정한다. 사람이 괜히 정치적 동물인 게 아니다. 이 정치적 동물의 정치적 사유는 정치적 성찰을 포함한다. 내년 오늘, 그 성찰의 열매로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나은 권력집단이 대한민국에 태어나길 기원한다.

언론인

■ "디도스 수사발표문, 조현오 청장실서 막판에 고쳐"
■ [한겨레21 단독]"청와대 지시로 디도스 금전거래 덮었다"
■ 노무현 수사 이인규 "저승 가 노통에게 빚 갚으라 따질 것"
■ 네덜란드 가톨릭교회서 수만명 '도가니' 충격
■ '일본군 위안부' 아픈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서 뺀 한국

2011-12-18

[시사저널] 아이유 새 앨범 원고 :: 김봉현맨

http://kbhman.tistory.com/m/650

손학규 “난 가련불쌍의 대명사”

"길 가는 사람들도 나한테 '불쌍하다'며 '괜찮으냐'고 한다. '불쌍가련'의 대명사가 됐다."

16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기자들과 임기 마지막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웃으면서 한 농담이었지만, 진심이 배어 있었다. 외롭게 선 그의 처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18일 민주통합당 임시지도부에 당권을 넘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방을 향해 떠난다. 앞으로의 정국 구상을 위해서다. 내년 4월 총선 구상이 1차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2월 대선의 본선 티켓을 따기 위해서는 총선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수도권 경쟁력을 내보여야 한다.

여건은 불리하다. 당대표 시절 구축된 '손학규 사단'은 사실상 해체됐다. 서울시장 경선 직후의 사퇴 소동과 야권 통합 과정에서의 당내 힘싸움 과정 등을 거치며 하나둘 떠났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끌어내는 원심력이 손 대표가 장악하는 구심력보다 컸던 탓이다.

지지율도 한자릿수다. 지난 4·27 재보궐선거에서 분당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직후 16~17%였던 지지율은 3분의 1 토막이 났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장을 넘어야 한다. 두 사람은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손 대표보다 지지도가 높다. 손 대표가 내년 12월 대선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점치는 정치전문가들이 드문 게 냉엄한 현실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손 대표는 리더십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난달 2일 민주당 중앙위원회 직후 손 대표가 또다시 사퇴를 고민하자, "그래서 경기고-서울대 출신이란 말을 듣는 것"이란 모진 소리를 했다고 한다.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사분오열되기 마련인 야당의 가닥을 꽉 쥐고 갈 수 있는 아귀 힘을 기르라는 주문이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난해 10월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손 대표의 임무는 민주당을 혁신하고 통합하는 일이었다"며 "좋은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그 절반인 통합밖에 이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대표로 선출된 지난해 10월은 6·10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을 기반으로 당을 바꾸기에 좋은 기회였다. 강력한 대여 투쟁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민주당은 그러지 못했다. 분당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직후 또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손 대표는 지난 5월 직접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당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천은 느렸다. 번번이 때를 놓쳤다. 영입과 통합의 대상들은 버텼고, 손 대표는 그들을 모을 힘이 부쳤다.

그래도 통합은 해냈다. 그에게 남은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그에게 혁신이 또다른 과제로 남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의 한 측근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서 확인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 혁신이 아닌, 한국 정치의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손 대표가 지방에 머물며 정치문화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답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걸 국민에게 어떻게 펼쳐 보이느냐가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전당대회가 열리던 지난 11일 오전 친구였던 조영래 변호사의 묘소를 찾았다고 한다. 인권변호사의 상징인 조 변호사의 기일이었다. 그는 먼저 간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갈 길에 대한 각오를 밝히지 않았을까. 그 길은 아직 짙은 안개가 낀 내년 12월 대선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