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5

[사설] 從北派가 진보당 휘어잡고 진보당은 민주당 끌고가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가 막판까지 버티다 결국 23일 불출마로 돌아섰다. 이 대표가 주연으로 등장한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은 터지자마자 단박에 두 당의 단일화 효과에 직격탄을 날렸다. 단일화에 따른 야당 상승세가 풀썩 꺾이고, 정당 지지도에서 새누리당이 민주·진보 연대를 앞섬으로써 총선 판세는 다시 알 수 없게 됐다. 이 대표와 통합진보당이 그동안 여권의 의혹이 터질 때마다 '도덕' '윤리' '정의'라는 단어를 앞세운 훈계를 도맡다시피 한 인물과 세력이어서 대중의 배신감과 충격이 더 큰 듯했다.

정치 마당의 상식적 판단은 이 대표의 사퇴가 늦어질수록 본인과 소속 정당, 민주·진보 연대 쪽의 피해는 더 커져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초 이 정치의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인터넷 방송에 나가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사퇴라는 말만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이 대표는 민주·진보 연대의 배후(背後) 추진 세력이라는 원로 모임이 나서 사실상 사퇴를 종용해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사퇴 여부는 무대 위에 선 본인과 진보당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그 너머 '어떤 세력의 몫'이 아니냐는 설(說)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이 수수께끼는 진보당의 전신(前身)인 민주노동당에서 이 대표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이 '그 어떤 세력'의 실체를 '경기동부연합'이라고 밝힘으로써 풀리기 시작했다. 진보당이 사퇴한 이 대표 대신 관악을(乙) 선거에 내세운 후보도 같은 '경기동부연합' 소속으로 알려졌다.

'경기동부연합'은 1990년대 경기도 성남과 용인을 중심으로 노동운동 등을 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 합류한 범(汎)NL(National Liberation)계라고 한다. NL계는 80년대 대학가에서 반미(反美) 자주화를 내걸어 자주파(일부는 주체사상파)로 불리며 급속히 성장, 사회주의 본래 노선에 더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PD(People's Democracy)계를 소수파로 밀어내고 대학가 운동권을 장악했다. 완강한 내부 기율을 기반으로 핵심 세력 중심의 전위(前衛) 정당 형태까지 갖추었던 NL계가 2000년대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당 지도부를 장악하더니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과 합쳐 통합진보당으로 몸집을 불리고 나아가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선거 연대까지 이뤄냈다. PD계는 이들을 종북파(從北派)라고 불렀다.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는 친노(親盧) 세력이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자신들이 과거에 잘못 판단했다는 양심선언까지 하면서 두 사안의 전면 무효화에 이토록 매달릴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 의문을 풀만한 실마리도 이번에 나왔다. 민노당에 이어 진보당을 장악한 종북파는 그들의 존립 근거인 한미 FTA 폐기와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에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므로 민주당이 그들과 손잡으려면 그들 요구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야권 전체로 보면 종북파는 아주 작은 세력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만한 결집력과 활동력을 가진 세력은 야권에 없다. 여권에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은 있을지언정, 종북파처럼 이념으로 똘똘 뭉친 집단은 없다. 이번 이정희 파동은 80년대 대학가를 주름잡던 종북파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나라 정치와 국가의 진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하려면 이들의 동향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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