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5

다섯살 때 美이민… 세계은행 66년 첫 非백인 총재 올랐다

김용(53) 세계은행 총재 내정자는 단순히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으로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또 하나의 최초의 역사를 썼다. 66년 세계은행 역사에서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총재직을 아시아인이 차지한 것은 김 총재 내정자가 처음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미국 아이비리그(동부 명문 대학)의 다트머스대 총장에 오를 때도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장벽을 깼다. 200여년이 넘는 미국 아이비리그 역사 속에서 아시아인이 총장에 선출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김 총재 내정자는 당시 다트머스대 총장에 취임할 당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내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이 됐다"며 "이 영광을 고국의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었다.
이 감격이 채 3년이 지나기 전에 그는 국제무대 최고의 자리인 세계은행 총재에 올라 대한민국에 다시 감격을 선사했다.
김 총재 내정자는 사익을 떠난 공익의 영역에서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버드대 의대에 재직할 당시 중남미와 러시아 등의 빈민지역에서 결핵 치료를 위한 신규 모델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아 30만명이던 후진국의 에이즈 누적 치료자 수를 130만명으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6년 타임),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2005년 US 뉴스 앤 월드리포트) 등에 선정됐고,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펠로상(2003년)을 수상한 바 있다.
아이오와주 머스커틴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으며 고교시절 총학생회장으로 활약했다. 학교 미식축구팀에서 쿼터백을 맡았으며,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담당했다.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성공 뒤에 부모님이 있음을 강조했다.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 속담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를 잘 고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김 총재 내정자의 부친 김낙희(별세)씨는 6·25전쟁 당시 17세의 나이로 혈혈단신 북한에서 피란 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아이오와대학 치의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모친 김옥숙씨는 경기여고 수석 졸업생으로 역시 아이오와대학에서 한국 철학 퇴계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실무적인 직업을 가진 부친과 큰 사상을 연구하는 모친을 둔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지역에서 자라면서 설움도 겪었다"며 "이를 보다 큰 비전과 용기로 바꿔 도전하면서 극복했다"고 했다.
김 총재 내정자는 보스턴 아동병원 소아과의사인 부인 임연숙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서남표 카이스트대 총장이 친한 친구다. 그는 평소 한국의 학생들에겐 "우선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고, 다음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부모들에겐 "너무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 김용 누구인가
1959년 서울 출생
1982년 브라운대 졸업
1991년 하버드대 의과대학 졸업
1996년 하버드대 감염질병 및 사회변혁프로그램 공동국장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담당 국장
2005년 하버드 의대 사회의료국 국장
2006년 타임 선정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
2009년 다트머스대 총장
2012년 세계은행 총재 내정

☞ 세계은행(World Bank)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에 근거해 1946년 6월 창설됐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복구 자금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을 위해 자문과 장기 자금 대여를 주업무로 한다. 매년 약 600억달러를 개발도상국에 차관 형태로 지원한다. 산하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경제개발협회(IDA) 등 2개 기구를 두고 있으며 회원국은 IBRD·IDA에 각각 187·171개다. 미국이 가장 많은 15.85%의 투표권을 갖고 있고 일본(6.84%)·중국(4.42%) 등이 뒤를 잇는다. 유럽권의 목소리가 강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미국 주도로 운영되며, 지금까지 모든 총재는 미국인이 맡았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

박종세 기자 j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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