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5

"사찰 은폐 몸통"이라는 이영호… 진짜 몸통은 최소 장관급?

현 정권 출범 5개월 만인 2008년 7월 21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청와대 별관에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문을 열었다. 이 조직은 출범 2년 만인 2010년 7월 민간인 사찰 혐의로 이인규 지원관 등이 구속됐고 최근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다시 뭇매를 맞고 있다. 전·현직 총리실 직원과 청와대 관계자를 상대로 윤리지원관실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살펴봤다.
◇"윤리지원관실 산파역은 이영호 비서관"
2008년 5~6월 '광우병 쇠고기' 논란으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6월 6일 국정 혼란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는 상황 판단 미숙과 정보 부재로 사태를 키웠다는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민심 파악과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새 조직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그로부터 40여일 만에 총리실 아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꾸려졌다.
그런데 역대 정권에도 그와 비슷한 조직이 있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의 '경찰청 사직동팀', 노무현 정권 때의 '총리실 암행감찰팀'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업무는 청와대의 하명(下命)을 받아 내사를 하고 공직자 비리를 자체 조사하며 각종 동향 정보를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편제상으론 총리실 혹은 경찰청에 설치됐지만, 청와대(민정수석)의 지휘를 받았던 사실상 청와대 조직이었던 셈. 조직 내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청와대 외부에 기구를 두었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 인수위에서 폐지했던 노무현 정권의 '총리실 암행감찰팀'은 이렇게 해서 불과 5개월 만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신장개업' 했다.
그러나 윤리지원관실은 태동 과정이 과거 정권의 조직과 조금 달랐다. 공직자 사정(司正)이 주 업무인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직 구성과 운영을 주도해야 했으나 민정수석실은 윤리지원관실 출범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총리실 전·현직 직원들은 "윤리지원관실은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그의 부하 직원들 주도로 만들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 비서관은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면서 고향도 포항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충성심과 보안 의식이 요구되는 사정기관의 구성을 아무에게나 맡길 순 없지 않으냐.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검증'된 이 비서관이 적임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 비서관이 이끌던 고용노사비서관실에는 포항 출신의 조재정 선임 행정관과 최종석 행정관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서관은 '당신이 윤리지원관실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총리실 김영철(사망) 사무차장이 (설치를) 주장했고 당시 나에게도 의견을 물어왔다"면서 마치 윤리지원관실이 자신과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답변했으나, 전직 총리실 직원은 "거짓말"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윤리지원관실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봐라. 이 전 비서관이 조직의 산파역을 맡았다는 점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윤리지원관실의 책임자이자 최고위 공무원으로 발탁된 이인규 지원관은 영덕 출신으로 포항고를 졸업했으며, '넘버2'인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은 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이 비서관의 부하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이 지원관과 진 과장은 둘 다 노동부 공무원으로 평화은행 노조위원장 등 노동계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이영호 비서관과 관심 분야가 비슷했다. 또 윤리지원관실 실무의 핵심인 김충곤 점검1팀장은 이 비서관과 같은 동네(포항 구룡포) 출신이었다. 총리실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진 과장과 김 팀장은 이 비서관의 '좌충곤 우경락'이었다"고 했다. 여기에 이 비서관과 윤리지원관실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던 최종석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 역시 포항 출신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상공부에서 잔뼈가 굵고 마산 출신인 김영철 총리실 차장이 윤리지원관실을 만들었다면 직원들을 이렇게 배치했겠냐"고 했다.
장진수 주무관의 최근 폭로 내용을 봐도 윤리지원관실과 고용노사비서관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윤리지원관실에서 활동비 280만원을 떼어내 정기적으로 '상납'한 대상이 이 비서관과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다는 부분이다. 이런 점을 봤을 땐 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하는 청와대의 부서는 외형적으로는 민정수석실로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운영 미숙으로 사찰 사건 불거져"
윤리지원관실을 만드는 데 고용노사비서관실이 개입했다 하더라도 막상 조직이 가동된 이후에는 그 '작전권'이 사정(司正) 전담부서인 민정수석실에 넘어가야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권력이 있고 정보가 모이는 조직을 누가 다른 데 주고 싶어하겠냐. 이 비서관은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윤리지원관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노동정책을 담당해야 할 노사비서관이 사정 업무에 관여하는 것도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윤리지원관실은 다른 기관에서 봤을 때는 '독립군'처럼 운영되는 듯했고, 이 비서관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윤리지원관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윤리지원관실은 출범 초기 '암행어사가 부활했다' '사라진 관가의 저승사자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반응을 받았다. 업무 범위 역시 과거 정권의 사직동팀이나 총리실 암행감찰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직자 비리를 조사하고 민심을 파악했으며, 이따금 청와대의 '주문'도 조용히 처리했다고 한다. 지난 정권에서 암행감찰팀에 근무했던 총리실 직원은 "당시 우리도 공무원, 공기업은 물론 필요하면 민간 대기업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면서 "현 정권의 윤리지원관실도 비슷한 활동을 했으나 '운영 미숙'으로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불거졌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사찰 업무를 하다 보면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도 전문 수사 인력이 아니라 노동계 출신 정치인과 노동부 공무원이 사정 작업을 주도했으니 뒤탈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나. 아마추어들이 만든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른바 '쥐코 동영상'을 올린 KB한마음 대표 김종익씨를 압박해 대표직을 그만두게 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인규 지원관과 김충곤 점검1팀장 등이 구속되었고, 이후 증거인멸 혐의로 진경락 과장이 구속됐다. 윤리지원관실은 2년 만에 '간판'을 내렸고 이후 공직복무관리관실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검찰은 2년 전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비서관의 역할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이인규 지원관이 사건 책임을 지면서 '윗선'의 연루 여부를 강력하게 부인했던 탓이 컸다고 한다.
◇"이영호 라인이 조직 좌지우지"
사실 윤리지원관실 주변에선 민간인 사찰 사건이 불거지면서 가장 억울한 인물이 '이 지원관'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왜 그럴까. 이 지원관은 윤리지원관실 운영 과정에서 이 비서관과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지원관은 행시 출신의 노동부 정통 관료로 이 비서관보다 여덟 살이 많다. 현 정권 출범 전까지 주로 노동계에 있던 이 비서관은 '존재감' 없는 인물이었으나,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지원관의 상급자가 되었다. 그런 이 비서관 역시 이 지원관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비서관이 '중용'했던 인물이 바로 자신의 심복으로 알려진 진경락 과장과 김충곤 점검 1팀장이었다. 전직 총리실 관계자는 "윤리지원관실 운영의 핵심은 바로 이영호-진경락-김충곤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다. 이들이 조직을 움직였던 인물"이라고 했다. 청와대 보고서를 작성하는 진 과장의 경우 직속상관인 이 지원관보다 먼저 이 비서관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수차례 목격됐다고 한다. 당시 중앙 부처에서 파견을 나온 한 직원은 "조직이 이렇게 운영되면 안 된다. 이 지원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다 결국 부처로 복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망에서 이 비서관이 빠져나가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이 지원관뿐 아니라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직원들이 '윗선'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대형 폭로'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고 있는데도 이를 '배려'해주지 않은 정권 실세에게도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전직 총리실 직원은 "사정기관 업무를 하다 보면 들키면 '큰 범죄'가 되지만 걸리지 않으면 '애국'이 되는 일이 가끔 있다. 그래서 민간인 사찰로 처벌받게 된 공무원들 입장에선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다만, 조직을 위해 희생했다면 그들을 '부렸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격려와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현 정권 사람들은 이들을 내팽개쳤다"고 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은 유죄가 확정되면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며 경우에 따라선 퇴직금도 받지 못할 처지다. 이런 사정을 아는 민주통합당에선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접근해 각종 '당근책'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로는 예견된 일, '머리'는 누구인가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이번에 청와대의 개입을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이 아니더라도 다른 직원들의 폭로도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장진수 주무관의 경우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다른 직원들과 달리 이 비서관이나 청와대 측에 도움을 강력하게 요청했는데, 당초 기대했던 '보상'이 돌아오지 않자 폭로를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관계자는 "윤리지원관실 사건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조직 운영도 엉성했고 이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그 수습 과정이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이 비서관은 최근 자신을 '증거인멸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증거인멸 과정에서 몸통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윤리지원관실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몸통' 역할을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윤리지원관실에서 벌어진 개별적인 정치인 사찰 사건에선 '머리'가 따로 있거나 이 비서관도 몸통이 아니고 깃털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리지원관실 한 조사관의 수첩에는 수많은 정치인의 이름이 거론됐는데 누가 이들에 대한 조사를 주문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다. 평소 이 비서관이 선점한 정보나 사찰 권력을 함께 향유한 인사가 밝혀진다면 이 또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당시 이영호 비서관의 위치를 고려하면 '윗선'은 몇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실세로 알려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만만하게 봤으며, 장관들도 어려워할 정도로 이 비서관의 기세는 대단했다"고 했다.

강훈 기자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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