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31

[101명이 추천한 파워클래식] "신문 사회면 샅샅이 읽은 도스토옙스키… 구원의 화두는 거기서 나왔다"

"소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주된 소재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돈, 치정, 그리고 살인. 도스토옙스키 소설엔 원래 돈 얘기가 많이 나와요. 작가가 젊었을 때 늘 돈에 쪼들렸고, 그러다 보니 팔리는 소설을 써야 했어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돈이죠. 그다음이 치정. 사랑 얘기 안 들어가면 안 되고, 또 살인 사건만큼 재밌는 게 없잖아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왔다. 30일 오후 서울 종각 부근의 북콘서트 전문카페 엠스퀘어. 조선일보와 출판사 '열린책들'이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주제로 마련한 북콘서트에서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가 미니 강연을 이어갔다. "당대 러시아 사회를 알기 위해서 도스토옙스키는 신문 사회면을 샅샅이 읽었어요. 사건을 찾아 읽고, 소설에 집어넣은 것이죠. 그러면 그의 소설이 대중 소설이냐? 그건 아니죠. 그는 이 팔리는 소재를 통해 '구원'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전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위대한 것은 가장 대중적인 소재로 가장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뤘다는 데 있습니다."

이날 콘서트는 명사 101명이 추천한 고전(古典)을 매주 한 권씩 소개하는 '조선일보 101 파워클래식'이 지면의 울타리를 넘어 독자들과 직접 만난 첫 자리. 신간을 펴낸 저자들이 북콘서트나 낭독회를 여는 것은 흔하지만, '고전'이 주인공인 북콘서트는 유례가 드물다.

"신청자 중에 인상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는데 내일 귀대를 앞두고 마지막 밤을 이 콘서트에서 불태우고 싶다고 하신 분, 오셨나요?" 맨 앞쪽에 앉아있던 김종서(26)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군대에서 읽은 책 중 가장 두꺼운 책이 바로 이 소설이었는데 이해가 잘 안 됐다"며 "앞으로 러시아 문학을 좀 더 접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서 신청했다"고 했다. 전업 작가가 꿈인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온 주부, 초등학교 때 처음 읽다 반쯤 포기했던 책을 10년이 지나 다시 읽고 도스토옙스키의 팬이 됐다는 청년, 올해 목표를 '매월 고전 한 편 이상 읽기'로 잡았다는 회사원….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독자 50여명이 '도스토옙스키'라는 묵직한 주제 아래 둘러앉았다. "이 소설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주인공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이지도 않았는데 왜 유죄 선고를 받았는가. '만인은 만인에게 죄인이다.' 이 문장에 답이 있어요. 작가가 말하는 구원이란 사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이죠."

2부에선 러시아에서 유학한 연극배우 이상구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알료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친구, 친구여, 나는 굴욕에, 지금 굴욕에 빠져 있단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참고 지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아, 엄청나게 많은 불행이 그 앞에 놓여 있는 거야!'…" 그가 마치 연극을 하듯 소설 속 한 대목을 낭독하자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관객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주부 주기숙(인천)씨가 "소설에 등장하는 '나'는 작가 자신이냐"고 묻자 석 교수는 "작가 자신으로 보기엔 좀 무리가 있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화자, 저자를 아주 많이 반영하는 화자로 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겨 행사가 끝난 후 석 교수는 "고전이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과 공감의 텍스트"라고 했고, 독자 정유진(53)씨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고전을 다시 읽으니 눈이 맑게 뜨이는 느낌"이라고 했다. '101 파워클래식'이 독자와 함께 읽을 다음 책은 공자의 논어(4월 2일자 문화면). 4월 7일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강연회가 열린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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