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5

신흥국 도전에 아시아계 선택… '오바마의 묘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계은행 총재 후보 등록 마감일인 23일 한국계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신임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사실상 세계은행 총재 결정권을 쥔 미국이 김 총장을 차기 총재 후보로 지명하면서 김 총장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은행 설립 이후 첫 한국계 총재로 선임될 전망이다.
미국의 총재직 독식에 신흥국 거센 반발
지난달 로버트 졸릭 현 총재가 오는 6월 말 임기가 끝나면 연임하지 않고 총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차기 총재에 누구를 지명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관행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럽 출신이 맡았고 세계은행은 미국이 맡아 왔다.
하지만 중국브라질을 중심으로 '이번엔 신흥국 출신이 총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브라질의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신흥국 후보가 세계은행을 이끌 수 있도록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세계은행과 IMF의 총재직을 미국과 유럽이 나눠먹기식으로 '세습'하는 것은 세계 국내총생산(GDP) 증가의 70%를 신흥국이 기여하는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신흥국의 세계은행 이사들이 신흥국을 대표할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해 몇 주에 걸쳐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콩조-이윌라 재무장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의 지지를 받고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등록하면서 '반란'을 꿈꿨다.
◇미국, 입후보 마감날 후보 지명
세계은행과 IMF에 절대적인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서로 상대방 후보를 지지해주는 상황에서 신흥국 출신이 기존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기는 했다. 세계은행에선 지원금에 따라 투표권 비중이 달라진다. 미국의 투표권이 15.85%이고, 여기에 유럽의 투표권까지 합산할 경우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이 합의한 바에 따라 사실상 총재가 결정돼왔다. 지난해 성추행 스캔들로 사임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후임자를 선출할 때도 신흥국은 "비유럽 출신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유럽 출신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 총재가 됐다. 하지만 이번 세계은행 총재 선출에서 신흥국이 일치단결해 특정 후보를 밀어줄 조짐을 보이자 미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신흥국이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미국은 마감 시한이 임박한 순간까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은행 차기 총재 인선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총재 후보로 거론된 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이름이 제일 먼저 거론됐지만 클린턴 장관은 총재직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수전 라이스 주(駐)유엔 미국대사도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라이스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유력한 차기 국무장관 후보인 까닭에 세계은행 총재를 맡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신흥국의 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셌던 이번 세계은행 총재 선출에서 미국은 한국계 미국인인 김 총장을 지명해 총재 자리도 지키면서 신흥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승범 기자 sb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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