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5

약자는 언제나 옳은가

[테마 읽기] 대중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단, 그전까지 시도된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한다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말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악(次惡)이라서 택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대중에 대한 평가와도 닿아 있다.
선거의 계절, 출판계도 민주주의와 대중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그 중 '내 안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책과 '우리 마음 속의 보다 나은 천사'를 일깨우는 책을 나란히 소개한다. 미국 내외 보수 정치인의 선거 전략가인 포럴의 책이 성악설(性惡說)이라면 미 원로 교육운동가인 파머의 책은 성선설(性善說)에 가깝다.

강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이성적 판단까지 흐릴 수 있어  
언더도그마
마이클 포럴 지음|박수민 옮김|지식갤러리|268쪽|1만3000원
이야기는 '언더도그(underdog)'란 단어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패자 혹은 약자다. 그런 약자를 무조건 옳다고 편드는 것이 언더도그마(underdogma). 약자는 그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말한다. 약자에 대한 선의의 동정심과는 다르다. 힘의 강약에 따라 '반사적'으로 편들거나 비난한다는 점에서 이성은 속수무책이다.
2007년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진의 실험 결과를 보자. 사람들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설명한 글을 읽힌 다음,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B그룹에는 작아 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다. 그 결과 A그룹의 70%가 팔레스타인을 약자로 판단했고, 53.5%가 팔레스타인을 편들었다. 반면 B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약자로 봤으며 76.7%가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사실과 관계없이 직관적인 크기로 약자를 판단하고 반사적으로 동정심을 보인 것이다.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란 단어가 있다. '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이란 뜻. 우리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 20여개 언어에 이와 비슷하게 강자를 비난하는 표현이 있다. 대중은 성경의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힌 이야기나 복싱 영화 '로키'에 열광하고 신데렐라 같은 반전(反轉) 동화나 드라마에 매료된다.
왜 그런가. 저자는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에서 체득된 습성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는 작고 무력한 상태에서 크고 힘 있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 그 과정에서 약자의 기분을 느껴봤고 힘센 존재에 의한 피해 의식을 키워왔다. 언더도그마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도 같은 이치다. 언더도그 아마추어가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을 꿈꾸며 열창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우승자의 음반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뉴스에서도 무명이 일약 스타가 되거나 유명인이 추락하는 기사가 단연 인기다. 오늘날 '악당'은 부자와 권력자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3등석의 가난한 청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반면, 1등석의 부유하고 괴팍한 사람들은 구명보트를 차지해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치인들이 서민 점퍼를 입고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드골은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하인의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언더도그마는 이제 전통적인 좌-우 이념을 대체해 우리 시대 쟁점을 보는 기준이 됐다. 문제는 언더도그마가 '주의(ism)'로 고착될 때다. 약자는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정당하고 강자는 어찌 됐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언더도그마가 판치는 곳에 음모론도 기승이다. 강자는 흔히 음흉한 '빅 브러더'로 묘사된다.
이 언더도그마를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누그러뜨리거나 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약자를 잘 다독거리고 격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 스스로는 비이성적인 언더도그마에 대해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연료로 굴러간다
극좌·극우는 늘 존재… 70%의 열린 마음이 공동체를 이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파머 지음|김찬호 옮김|글항아리|328쪽|1만5000원
앞에서 말한 '언더도그마'는 이 책에서는 마음이 병든 상태로 분류된다. 마음이야말로 그동안 무시돼온 민주주의의 인프라다. 따라서 고장 난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면 마음의 습관부터 재건해야 한다.
마음이 병든 것은 내적인 공허함 때문이다. 그 결과 거짓되고 해로운 의미 체계에 쉽게 현혹된다. 광고를 앞세운 소비주의가 하나, 다른 하나가 '희생양 만들기'다. 그 점에서 저자는 이 시대의 정치를 '상심한(brokenhearted) 자들의 정치'라 부른다. 정치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분파적이고 양극적이 되어 모두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힘을 믿는다. 모범 답례로 제시되는 것은 뜻밖에도 저자가 뉴욕에서 조우한 택시 기사의 말이다. "어떤 손님이 탈지 전혀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조금 위험하기는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어요. 거기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 도움이 되지 상처가 되지는 않아요. 대중은 늘 신선하지요."
저자는 이 택시 기사야말로 민주시민의 덕목인 개방성과 당당함, 겸손함을 겸비했다고 본다. 민주주의도 같다. 서로간에 많은 차이에도 불구, 다양한 사람과 만날 기회를 얻고 타인들이 내 삶을 풍부하고 활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믿음 속에서 배우며 앞으로 함께 나아간다. 타자를 두려워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차이가 빚어내는 긴장을 끌어안아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갈등을 연료로 삼는 발전소가 민주주의다.
인간이나 정치의 본성 탓에 도저히 대화 불능인 사람들도 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대화해도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이 좌·우파에 각각 15~20% 정도 있다. 1787년 미국 제헌회의에서도 55명 대의원 중 39명만 최종 문서에 서명했다. 30%는 동의 못한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60~70%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란 얘기다. 이 정도면 민주주의가 곤경을 벗어나는 데 충분하다.
저자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언어폭력의 수위를 높이며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매일 걸어서 출근하면 좀 더 나은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은 의회나 정치권이 아니다. 거리의 카페이고 공원이고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눈인사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저자는 이런 시민들의 접촉과 대화, 유대감을 키워갈 수 있는 공간을 의식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두 책은 마치 사전에 역할 분담을 한 것처럼 동일한 실체의 앞뒷면을 조명한다. 고장 난 대중 민주사회를 앞에 두고 어떤 진단과 처방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읽는 내내 숙고하게 된다. 둘 중 어느 하나를 덮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그렇듯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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