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4

정당 벽 넘어 ‘새판짜기’…시민들 정치변화 열망 거셌다

박원순 '돌풍' 어디서

'바람'이 '조직' 넘어서
시민운동가로 헌신적 삶 국민신뢰가 승리 원동력

야권 지지자 전략적 선택
민주당이 미는 시민후보 본선 경쟁력 낫다고 판단

시민후보 총선서도 바람?
총선은 정당 대결구도 야권 단일화해야 탄력

바람은 무서웠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 선출 투표가 진행된 3일 오후 투표장인 서울 장충체육관 앞은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30~40대 시민들로 북적였다. 당원들의 조직표를 바탕으로 국민참여경선에서 '대역전극'을 기대했던 민주당의 희망은 힘없이 무너졌다. 현장에 나와 있던 민주당의 조직 전문가들은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날 국민참여경선에서 박원순(55) 후보가 예상을 깨고 선전했고, 결국 종합점수에서 박영선(51) 민주당 후보를 누를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시민후보였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민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9월6일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분"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후보가 '안철수 돌풍'을 타고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박원순 후보가 시민운동가로서 이미 쌓아 둔 대국민신뢰가 없었다면, 지지율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박원순 후보의 지금 인기는 대부분 '자신의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박원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57.65%로, 박영선 후보의 39.70%를 크게 앞섰다.

둘째, 야권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다. 야권 지지자들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보다는, '민주당의 지지를 받는 박원순 시민후보'가 경쟁력이 앞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투표에 참가한 민주당원들도 모두 다 박영선 후보를 찍지는 않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자체 분석이다. 손학규 대표도 경선 전 기자 간담회에서 이럴 가능성을 우려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내년 4·11 국회의원 선거, 12·19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진보정당, 그리고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의 힘을 합쳐, 한나라당과 '한판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있다. 박원순 후보는 경선기간 내내 "이번 선거를 통해 혁신과 통합,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더 큰 민주당, 더 큰 통합정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염원에 응답했다.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한나라당-민주당 양당 대립구도로 짜인 정치질서를 뒤흔들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최종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른바 '제3후보' 돌풍이 기존 양당체제의 벽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제3후보' 돌풍은 1992년 대선의 정주영 후보, 1995년 서울시장 선거의 박찬종 후보, 1997년 대선의 이인제 후보, 2002년의 정몽준 후보로 이어졌지만, 번번이 한나라당-민주당 대립구도에 가로막혔다.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시민후보'나 '제3후보'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일까? 총선에서는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 선거구별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시민운동가 자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들이 제3의 정당을 만들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시민운동가들이 기존 정당이나 새로 만들어지는 야권 통합정당에 들어갈 경우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에서는 어떨까?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제3후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며 "대통령 선거에서 제3후보가 당선되려면, 먼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 뒤에는 다시 착근시키는 두 개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대선 국면에서 바람은 야권 바깥에 있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오는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쨌든 내년 대선에 나설 수 있는 '제3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람은 바로 안철수 원장이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나설까?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됐지만 본선거 승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보수 성향의 탄탄한 조직표가 있는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는 앞으로 언론과 집권 여당의 혹독한 검증을 통과해야 하고,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풀어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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