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가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159만명을 넘어섰다. 영화의 인기는 극장 밖으로 나와 사회에 큰 파동을 몰고 왔다. 빗발치는 여론에 경찰은 영화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흥행을 넘어서 사회현상이 된 열풍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소개한다.
'무진'과 닮은 한국사회
영화 가 흥행돌풍을 일으키자, 경찰은 재수사를 발표하고 보건복지부와 한나라당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발의를 발표했다. 흥행돌풍도 뜻밖이지만, 정치권의 반응이야말로 참 새삼스럽다. 인화학교 사건은 이미 을 통해 알려졌고, 소설도 많이 읽히지 않았던가. 물론 영상은 활자보다 직접적이고, 영화 관람은 독서보다 동시적 집단행위로 파급력이 높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의 흥행 요인을 텍스트적 맥락에서 보면 세 층위를 지닌다. 첫째, 실화 자체의 충격성이다. 장애인시설 교장과 교직원들이 어린 학생들을 수년간 상습 성폭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이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복직되었다는 사실은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둘째, 소설에서 도해한 권력의 구도가 명쾌하다. 사학비리, 전관예우, 교회, 학연 등으로 얽힌 '가진 자들의 연대'를 선명히 부각시키며, 이 사건이 우연한 괴담이 아니라 구조적 사회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셋째 영화화되면서 더 급진화된 관점을 갖는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재판 후 피해자가 직접행동에 나선다. 이를 통해 영화는 '선한 비장애인이 법에 호소하여 약한 장애인을 악에서 구출한다'는 보수적 구도에서, '장애인 스스로 가장 격렬한 저항의 주체가 되고, 비장애인이 그를 추모하며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고 싸우는' 진보적 구도로 나아간다. 또한 영화는 소설이 치중했던 남녀 주인공의 몫을 덜어내고, 아이들의 역할을 강화한다. 여기에 가장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노모의 시선 변화까지 첨가하여, 영화는 가장 낮은 자세와 시선으로 관객에게 사건을 이해시키려는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뚜렷한 증거까지 말소하는 검사와 술자리 장면을 넣음으로써, '사법적 정의'가 불가능함을 확인 사살한다. 그리고 말미에 사법적 싸움으론 졌지만, 저항을 통해 주체가 변하고 희망을 품은 사람들의 연대로 게토가 형성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싸움이 견지해야 할 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가 흥행하는 가장 큰 요인은 콘텍스트적 맥락에 있다. 즉 지금의 한국 사회가 영화 속 '무진'과 한 치도 차이가 없음을 관객 모두 공감하기 때문이다. 사학권력과 기독교단이 한 몸이 되어 방어했던 사학법 개정, 그 싸움의 첨병이었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이들이 대표하는 자본가들, 그들의 사교육 독점으로 강화된 학연, 그 정점의 사법권력 등등. 이들이 선거를 비롯한 분기점마다 노골적인 계급결계를 과시하는 것을 수차례 목도하지 않았던가. 이제 '무진'의 안개는 걷히고 실체는 명확해졌다. '도가니'는 분노로 들끓을 일만 남았다. 분노하라!
황진미 영화평론가
아동 성범죄에 관용 배제해야
최근 개봉한 란 영화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영화가 이렇게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무참하게 유린된 청소년 장애인들의 인권문제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그래서 관계기관은 황급히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나서고, 수사기관은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재수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후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사건의 대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났고, 일부는 형사처벌을 받음으로써 일사부재리 원칙과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따라 처벌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공소시효를 폐지함으로써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충분한 이유가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도 살인, 테러, 성범죄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 폐지가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중범죄와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은 국가의 법정책상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공소시효의 폐지만으로는 아동 성범죄의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대책이라 볼 수 없다. 다만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현행 법체계에서 최대한으로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아동 성범죄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 성범죄 예방을 위한 교육을 학교에서부터 체계적·구체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범죄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일반 성범죄와 구분하여 아동 성범죄에 대한 특별법까지 제정한 취지를 살려서 아동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의 하한선을 상향조정하여 처벌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을 배제해야 한다. 또한 아동 성범죄의 위험성에 노출된 학교나 시설 등에 대한 철저한 실태 파악과 함께 상시적인 감독과 감시를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피해자의 원상 회복을 위한 평생치료제도 등 보호제도도 강화해야 한다. 아동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인권의 주체이면서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와 사회환경의 조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장애아동 처절한 현실, 직접 보라
현장에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지원해온 필자는 '도가니 사태'를 지켜보며 복잡한 심정이다. 는 주인공 인호(공유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호'라는 대리자의 시점은 인화학교 사건 피해자들의 처절한 일상에 접근하는 데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장애아동의 현실은 대리자의 눈으로만 일부 '보여진다'. 우리는 '엄청난 사건'을 보고 분노하고,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사건 해결에 참여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영화가 높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인호는 '보호자들'이 오히려 장애아동의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을 발견하고, 또다른 '보호자'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힘없는 장애인'과 '보호자'라는 구도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것이 우리가 의심해야 할 시선이다. 장애인은 시설에서 '보호를 받는' 입장이나 사건 해결의 '대리를 받는' 입장에 놓인다. 그런데 장애인을 보호하고 대리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선택인가.
영화에서 사건의 해결은 두 가지 차원, 즉 현실 법제도에서 장애아동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는가와 불의를 저지른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가에 집중된다. 그러나 어린 나이부터 시설에서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에게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의 경험을 박탈당해온 이들에게 법제도 틀 안에서 피해를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이는 기존 법제도라는 '상식·정상성'에 안전하게 기대 살아온 이들의 시선이자 욕망이 아닐까?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현실은 어떤가?
장애아를 출산한 많은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한다. 입양도 잘 되지 않는다. 수많은 무연고 장애아가 장애인시설에 수용된다. 장애여성의 출산을 막아야 한다며 많은 보호자들이 그들에게 불임시술을 종용한다. 장애아동·청소년이 학교나 또래집단에서 '왕따'나 폭력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까지 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육이나 노동의 기회를 비롯한 기본적 사회관계망을 갖기 힘든 많은 장애여성이 가정이나 시설, 지역에서 가족(보호자)이나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된다. 사회적 '상식'의 기준을 의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현실을 사실상 암묵적으로 용인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며 '정상' 사회의 안전함을 지켜왔다.
지금 우리가 '분노'하거나 '위안'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이고, '도가니 사태'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해야 할 때다. '그들'과 나의 거리를 좁히고 직면할 때 를 넘어설 수 있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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